북한이 전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과거에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전쟁연습’이라고 부르며 격하게 반발했다. 이번에는 북한이 지난달 30일 북·미 정상 판문점 회담 이후 처음으로 가장 공격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이어서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다음 달 실시 예정인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은 공식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대체하는 것이다. ‘19-2 동맹’ 연습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번 연습 명칭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 연습은 병력과 장비를 실제 투입하지 않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설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진행된다. 군 관계자는 17일 “한·미 지휘관과 참모들이 적 도발 상황에 따라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느 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지를 숙달하고 이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점검하는 연습”이라고 설명했다.
연습 시나리오는 매년 새로 작성된다. 이 시나리오에는 최신 북한군 전력과 주요 공격 좌표 등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습은 우선 북한군의 국지 도발이나 테러 등 위기관리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다음 달 5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한 철도역에 북한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군 지휘부는 지역 부대에 출동 명령을 내려 수색 및 진압 작전 등이 이뤄지는 식이다.
본격적인 훈련은 전면전 이후를 가정한 1부 방어와 2부 반격 연습이다. 전시(戰時) 전환과 작전계획 시행 절차 연습이 8~9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과거엔 우리 군이 미 증원전력과 함께 평양이나 그 위쪽으로까지 밀고 올라가는 반격 연습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번 반격 연습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 3월 키리졸브(KR) 연습을 대체해 실시한 ‘19-1 동맹’ 연습에선 반격 연습을 생략한 바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연합연습에 반대하는 북한 의도는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유사시 한·미 연합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고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의미다. 한 예비역 장성은 “KR이 축소되고 실제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독수리훈련(FE)마저 종료된 가운데 북한이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은 한·미 연합훈련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습에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조건인 한국군 주도의 전시 대응이 가능한지를 평가하는 기본운용능력(IOC) 검증도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축소해 실시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북한 반발에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협상 지렛대를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의 조건으로 체제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대규모 연합훈련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실무협상 전 기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 훈련 실시를 준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지명자는 16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주한미군의 군사적 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답변했다. 다만 우리 군 일각에서는 비핵화 협상 여건을 만들기 위해 이번 연습이 9월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