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혁상] 윤석열 퇴임사가 궁금하다

입력 2019-07-18 04:01

서울 서초동에서 법조 기자로 일하던 2009년 8월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대검 중앙수사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그의 서거 이후 법무장관 및 검찰총장이 사퇴한 뒤에 김 총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 총장의 취임 일성은 국민 지지와 사랑을 받는 검찰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검찰 문화도 바뀌어야 하고, 검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2년 뒤 임기 만료를 한달여 앞두고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속에 사퇴한 그는 이임사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2011년 8월 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사를 지금 돌아보면 살벌함을 느낄 정도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3대 전쟁’을 선포했다. 부정부패와의 전쟁,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 검찰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했다. 사상 초유의 ‘검란’에 휘말려 중도 사퇴한 그는 이임사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은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졌다”고 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검찰 수장인 채동욱 검찰총장은 2013년 4월 취임 당시 자신의 심경을 충무공의 비장함에 빗댔다. 그는 불과 5개월 뒤인 그해 9월 퇴임했지만, 이임사에서 외부의 모든 압력과 유혹을 막아내겠다고 했던 약속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켰다고 자평했다. 후임인 김진태 검찰총장과 김수남 검찰총장의 취임사 및 이임사도 법질서 확립, 국민 신뢰 회복, 정치적 중립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2년 전 문무일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어땠을까. 헌법가치와 법질서 수호, 부정부패 엄정 대처를 거론하면서 국민 신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지키는 반석이 되겠다고 했다. 이임사는 아니지만, 문 총장은 지난달 간담회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국민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고 했다. 또 “정치적 중립성, 수사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퇴임하는 그의 이임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고위공직자의 연설이나 발표, 취임사엔 당시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시각이나 조직이 풀어야 할 해결과제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역대 검찰총장의 취임사에 부정부패와 구조적 비리 엄단, 국민의 신뢰 회복, 낮은 자세,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의 문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대 총장들이 항상 이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풀기 어렵다는 점을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은 25일 제43대 검찰총장 임기를 시작한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의 해묵은 과제들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중립 여부에 대해선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치 논리에 따르거나 타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검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권력 유착 지적은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제 식구 봐주기, 부실수사 등 여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셀프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차기 총장은 취임사에서 자신의 꿈을 담은 메시지를 밝힐 예정이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적 중립은 끝까지 지키면서,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취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역대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공언했던 수많은 신념과 원칙은 흐지부지되고 재임기간 많은 시비와 논란으로 변질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윤 차기 총장은 얼마 전 제 식구 봐주기 논란에도 휩싸였다.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고 한다. 며칠 뒤의 취임사보다 오히려 2년 뒤 이임사를 통해 윤 총장이 검찰의 숙제를 제대로 해결했노라고 자신있게 얘기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