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시행령 개정을 거쳐 적용 기준을 완화해 현 공공택지 중심에서 민간택지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본격 도입될 전망이다.
분양가 규제의 타깃은 분명하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와 대규모 복합개발단지다. 이들 단지의 가격 준동을 막겠다는 게 1차 목표다. 분양가를 제한해 개발이익을 줄이면 이는 사업수요 자체를 억제하는 효과로 나타나게 된다. 재건축사업 진척이 더뎌지면 대상 아파트에 대한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최근 시장에서 감지되는 현금부자들의 ‘급매물 줍기’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집값은 다시 안정세를 찾게 된다는 일련의 논리구조를 가진다.
분양가상한제의 단기적 시장안정 효과 역시 분명하다. 업계에선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다는 정부의 시그널만으로도 시장 위축이 현실화됐다고까지 얘기한다. 다만 도심권 사업 위축에 따른 공급 부족이 중장기 부작용으로 대두할 것이란 우려는 피하기 어렵다. 이는 분양가 제한 정책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쉽게 예측 가능한 대목이다.
아파트 분양가 규제의 연원은 박정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붐으로 부동산 시장에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아파트 가격 급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정부는 1977년 최초로 ‘분양상한가’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공급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신축 공동주택에 동일한 분양가를 일괄 적용했다. 최초 평당 77만원이던 분양가는 1981년 105만원, 1988년 130만원으로 점차 올랐다.
획일적 분양가 규제는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졌고, 1980년대 말 ‘전세대란’으로 상징되는 부동산 혼란을 야기했다. 이에 노태우정부는 1989년 기존 분양상한가를 폐지하고 ‘분양가 원가 연동제’를 도입한다. 택지비와 건축비에 연동시켜 적정 이윤을 더한 합을 분양가로 산출하는 방식이었다. 건축비는 매년 건설부 장관이 고시하는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건설업체 도산이 잦아지고, 결정적으로 외환위기 발생에 따라 주택 시장 침체와 미분양 급증이 몰아치자 분양가 규제 완화가 본격화된다.
1997년 강원, 충북 등 4개 권역 전용면적 25.7평 이하 자율화를 시작으로 수도권 이외 전면 자율화, 민간 사업자 보유 택지 자율화 등 점진적 조치 끝에 김대중정부는 1999년 전면 자율화로 분양가 규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분양가 자율화는 2000년대 초반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고분양가에 따른 주변 시세 상승이 다시 분양가 상승을 견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분양가가 1998년 512만원에서 2006년 1546만원으로 급등하자 노무현정부는 분양가 규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2005년 공공택지 분양가상한제 재도입을 시작으로 2007년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의 모든 공동주택에까지 상한제를 확대 적용했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던 노무현정부는 택지비, 공사비, 설계감리비, 부대비, 가산비 등을 공개하는 분양가 공시제도도 도입했다.
분양가 규제의 부작용은 급격한 공급 감소와 미분양 물량 증가로 재차 확인됐다. 규제 시행 1년 만에 분양가상한제 적용 민간주택은 3700가구, 수도권 물량은 500여 가구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 내 신규 공급이 쪼그라들었다.
특히 분양가상한제를 양날의 검으로 만드는 분양가 상승 억제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은 ‘로또분양’ 논란을 불렀다.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양 시장 내 눈치싸움이 이어지면서 2008년 전국 미분양 주택 역시 13만 가구로 급증했다. 더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이명박정부는 분양가 공시 항목을 축소하고 주택형에 따라 분양가상한제 예외 대상을 설정하는 등 다시 규제 완화에 나섰다.
박근혜정부 역시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2015년 공공택지에 한정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고 민간택지에 대해서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해 적용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민간 분양가상한제를 유명무실화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은 일관되게 ‘투기수요 억제’를 향해 달려왔다. 2017년 8·2 대책, 지난해 9·13 대책 등 대출·세제 강화로 수요를 억제하며 노무현정부와 유사한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역시 2017년 민간택지 적용 기준을 완화하는 주택법시행령 개정안으로 시동을 걸었고, 올 하반기 한 차례 더 개정을 거쳐 실제 분양가상한제를 시장에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과거 시행과 완화를 반복했던 전례에 비춰봤을 때에도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적용은 일종의 ‘최후의 방책’이자 ‘하(下)책’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와 업계 대다수의 평가다. 단기 안정이라는 결과물의 지속성에 비해 필연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딜레마, 공급 불균형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야기할 수밖에 없어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는 1980년대와 2000년대에 두 번이나 가격 억제와 후폭풍을 겪어봤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시장 역시 마찬가지 경험을 수차례 했다”며 “분양가 규제를 통한 단기 처방은 결국 무조건적인 공급 축소로 귀결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수요 억제와 대출 규제는 결국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의 악순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 공급을 늘리는 선순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정책 실패를 반례 삼아 단순한 분양가 규제를 지양하고 관련 정책 허점을 촘촘하게 다듬는 종합대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19일 “시장에 미칠 막중한 영향과 정책적 내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거둬들일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 그렇다면 (정책적) 검토를 정말 제대로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로또분양으로 불특정 다수가 받을 혜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한정하거나 전매 제한 기간을 확대해 적용 대상을 제한하는 절충점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피할 수 없는 공급 위축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한시적으로 연동해 완화하는 등 다각도의 보완책으로 역효과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