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택시업계와 신규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의 종합 상생 방안을 발표한다. 기존 택시와 면허를 보유하지 않은 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 사이의 갈등을 좁히는 조치다. 중재자로 나선 국가가 택시 면허를 사들이고, 이를 플랫폼 업체에 임대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택시 수를 줄이되 그만큼의 면허를 플랫폼 서비스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다만 상생안이 제대로 힘을 쓰려면 ‘국회’ ‘재정’이라는 굵직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상생안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 국회의 도움, 면허를 사들이는 데 필요한 ‘나랏돈 지원사격’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당초 올 상반기 안에 택시·플랫폼 상생안을 발표하려고 했다. 지난 1월 22일부터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 논의를 이어갔고, 지난 3월 택시업계와 플랫폼 업체 간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큰 줄기에서의 합의점을 도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하지만 ‘국회 파행’이 이어지면서 상생안 발표는 이달로 미뤄졌다. 상생안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선 관련법을 개정하거나 플랫폼 모빌리티 서비스 관련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를 먼저 거쳐야 한다.
특히 국토부는 ‘택시 월급제’라는 선행과제를 해결한 뒤 향후 신설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단계별 계획을 세웠다. 택시 월급제 전면 도입은 택시업계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라고 비판받는 ‘사납금 제도’의 종식을 뜻한다. 국토부는 택시 월급제를 전면 도입하지 않으면 업계 간 합의를 전제로 만들어진 상생안이더라도 ‘설익은 열매’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현재처럼 사납금 제도가 유지되면 택시기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상생안에서 규정한 근무 형태를 벗어나 승차거부 등 구태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토부 핵심 관계자는 16일 “택시업계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는 이용자에게 신뢰를 받는 방법이다. 현재 택시산업 구조상 법인택시는 기사들의 근로 여건이 균일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플랫폼 택시 서비스를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사납금 제도에 맞춰 기사들의 근무 형태가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서비스 질과 신뢰성까지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택시 월급제 도입’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상생안 발표 시기를 조율했다. 국회가 한동안 열리지 않아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상생안 준비도 그만큼 늦어졌다. 지난 12일에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택시 월급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가결됐다. 두 법안의 뼈대는 법인택시 사납금 제도를 없애고 내년 1월부터 전액관리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택시·플랫폼 상생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서 택시·플랫폼 업계와의 상생안 논의 속도도 빨라졌다”고 전했다.
이후 국토부는 지난주 상생안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지만 한 주 더 계획을 미뤄야 했다. 상생안 주요 내용을 국회에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향후 상생안이 법적으로도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국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책을 발표할 경우 정쟁에 빠져 또다시 사태가 지지부진할 수 있어 국회와의 협의를 우선적으로 마쳤다”고 설명했다.
상생안의 기본 틀은 정부가 택시 면허를 사들인 뒤 플랫폼 업체에 임대하는 것이다. 택시 면허의 총량을 유지하고, 개인택시 감차분에 한해 신규 운송사업자 지위를 신설해 면허를 발급해주는 방식이다. 도로를 달리는 택시 수를 줄이되 그만큼의 택시 면허를 플랫폼 서비스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빠른 고령화로 만 65세 이상 고령 택시기사가 늘고 있는 상황도 감안했다. 고령 택시기사의 면허를 매입해 퇴직을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차도 추진하겠다는 ‘일석이조의 수’다.
3차 택시총량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전국 택시 적정 대수는 19만9715대다. 그런데 전국에 공급된 택시는 25만5131대(법인택시 포함)로 5만여대 ‘초과공급’ 상태다. 개인택시 비중은 전체 택시의 약 65%에 이른다. 정부는 올해까지 2만5000대의 택시를 줄일 계획이었지만 2015~2017년 감차 실적은 약 1900대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상생안의 성패를 가를 가늠자로 ‘재정 지원’이 떠오르고 있다. 필요한 재원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개인택시 면허는 대당 6500만~7000만원 수준이다. 정부가 연간 1000대를 매입한다 해도 최소 650억원에 달하는 나랏돈이 필요하다. ‘타다’ 같은 유사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 업체가 정부에 ‘사회적 기여금’ 형태로 차량 1대에 월 40만원을 부담한다고 해도 연간 48억원을 보전받는 데 그친다.
여기에다 정부가 면허 매입 정책을 지속하면 면허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한때 택시 면허 가격은 1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최근 고령 택시기사들의 은퇴로 매물이 많아지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든 오름세로 돌아설 수 있다. 정부가 적정선의 면허 매입 가격을 정하지 않는다면 소요 재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적정 매입 가격’을 두고 정부와 업계 간에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무한정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사안을 해결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막판까지 고민하고 있다.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전슬기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