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민주당의 진보 성향 유색 여성 하원의원 4인방을 겨냥해 “미국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떠나라”고 한발 더 나갔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백인들의 표를 의식해 인종차별 논란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의도다.
진보 여성 4인방은 미 의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은 헌법을 비웃는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며 역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인 공격은 주요 이슈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책동이라며 “미끼를 물지 마라”는 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반하장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급진 좌파 여성 하원의원들은 그들이 사용한 끔찍한 언어에 대해 언제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국민, 백악관에 사과할 것인가”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며 “당신들이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면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는 진보 4인방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친(親)알케에다’ ‘반(反)이스라엘주의자’ 등으로 묘사했다. 색깔론을 넘어 테러조직과의 연계성까지 거론하며 위험수위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이스라엘을 언급한 것은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유대인계 표심을 의식한 전략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연례 미국산 제품 전시회’ 연설에서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증오한다”면서 “내 얘기는 그들이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떠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가)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든다’고 하는데, 이 말이야말로 아주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들 4인방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가하면서 미국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잘못을 4인방에게 돌리며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백인 대 유색인종’이라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 내년 대선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진보 여성 4인방은 기자회견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은 “대통령이 우리의 헌법을 비웃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지금은 우리가 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인방의 리더 격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인권을 침해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사에 놀라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것”이라며 “우리의 어젠다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소속 정당인 공화당에선 양비론이 대세다. ‘친트럼프’ 성향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정책에 집중하라”고 조언하면서도 4인방을 향해선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수전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선을 넘었다”면서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NN방송은 16명의 공화당 상·하원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