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낸 것은 일본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조만간 추가 보복 조치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이유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면서 대화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전략물자 밀반출, 대북 제재 이행 위반으로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허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현재와 미래 산업으로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은 정말 문제라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 등의 표현이 담기는 등 일본에 대한 불쾌감이 역력했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지난 8일 대통령의 첫 공식 발언과 비교하면 발언의 방점도 당초 ‘협의 제안’에서 ‘경고’와 ‘부당성 지적’으로 확연히 달라졌다. 8일에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15일에는 일본 정부를 향해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짧게 언급한 뒤 나머지 발언은 대부분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발언만 놓고 보자면 문 대통령의 입장이 일주일 사이에 강경한 맞대응으로 선회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간 축적해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조치가 양국 관계의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난 8일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 제안 이후 한국 정부는 여러 경로로 일본 정부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외교부는 일본과 국장급 협의를 기대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12일 일본 경제산업성과 과장급 협의를 했지만, ‘창고 회담’에 그쳤고 발언 내용을 놓고 진실 공방만 벌어졌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 정부의 협의 제안에 아랑곳없이 추가 보복까지 예고했다. 일본은 다음 달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안보상 수출 우호국)에서 제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단순히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안보효과를 노린 ‘선거용’이 아니라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까지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협의 제안만 되풀이할 경우 자칫 일본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이 기존 태도를 고집하고, 미국이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경제적 어려움을 각오하고서라도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강하게 비판해 ‘명분 싸움’에 나선 측면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 대응과 관련해 국회와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도 당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을 두고 “경제위기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위기극복의 자신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연설에서 이순신 장군을 강조한 데 이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국채보상운동을, 조국 민정수석이 동학농민운동의 ‘죽창가’를 언급한 것도 이번 사태에 맞서 국민들의 단결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성수 박세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