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독려, 정당한 조치냐 괴롭힘이냐… 기준 뭡니까

입력 2019-07-16 04:09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산업안전보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저성과자 독려 행위와 구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합리적인 성과 관리가 부당한 괴롭힘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인데 노동자단체는 “괴롭힘의 합리화”라고 반박했다.

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법 시행 첫날(16일)을 앞두고 기업들로부터 관련 취업규칙, 징계 절차 등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 이준희 경총 수석연구위원은 “독려행위와 괴롭힘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괴롭힘 행위의 구체적인 사례는 어떤 건지, 징계·해고는 어떤 절차로 이뤄져야 하는지, 취업규칙은 언제까지 마련해 정부에 통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정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괴롭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무엇인지 아직 판단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저성과자를 독려하는 것이 자칫 괴롭힘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것도 어렵다. A사는 업무가 미숙한 직원을 술자리로 불러 “자꾸 실수를 하면 다른 부서로 보내겠다”고 한 팀장을 해고 조치했다. 인사권자도 아닌데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언급은 협박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노동위는 회사의 조치가 지나쳤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경총은 지난 10일 ‘저성과자 성과향상 촉진 조치와 괴롭힘 구별을 위한 판단요소’ 20가지를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공개적인 비난, 성과향상과 무관한 지적과 질책, 인격에 대한 부당한 평가, 신체·정신적 폭력 등이다. 반면 저성과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주며, 명확한 성과 목표를 제시했다면 정당한 독려 행위라고 봤다.

하지만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성과향상 조치는 추상적이고 애매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경총이 만든 판단요소를 적용하면 직장 내 괴롭힘의 대부분은 성과향상 조치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제도 취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괴롭힘이 발생하면 기업은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대외신뢰도 하락, 내부 조직원의 충성도 붕괴 등으로 겪게 되는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다만 법 내용이 모호하다고 우려한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저성과자 독려와 괴롭힘 행위 구분이 어렵다는 우려는 향후 사례가 쌓이면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괴롭힘 문화가 사라지면 기업도 소모적인 분쟁 비용을 아끼고, 업무성과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