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가 변신 중이다. 자동차 주유 공간을 넘어 전기차 충전소, 택배 서비스 장소로 활용하며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주유소가 너무 많아져 기존 사업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한계상황’에 봉착했다는 현실적 이유가 주유소의 변신을 재촉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중앙제어, 차지인과 함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에 나선다고 15일 밝혔다. 중앙제어는 국내 1위 전기차 충전기 제작 업체이고 차지인은 충전기 운영 전문기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이들과 함께 ‘하이브리드 스테이션 컨소시엄’을 구성해 내년까지 서울, 부산, 대구, 속초 소재 주유소와 대형 소매점 10곳에 급속 충전기를 설치·운영할 예정이다. 운영 수익은 세 개 회사가 합의한 비율대로 나눈다. 일정 시범운영 기간이 지나면 현대오일뱅크는 전국 2300개 자영 주유소로 전기차 충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전국 거점도시 내 대형마트와 카페,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도 충전기를 설치·운영한다. 20, 30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기차 운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서다.
앞서 GS칼텍스도 5월 말부터 LG전자, 그린카, 시그넷이브이, 소프트베리와 함께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7월까지 서울, 경기, 부산, 울산, 광주 등 5개 지역 13개 주유소에서 14기의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 중이다.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하는 건 전기차 성장 속도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5만6000대 수준이던 전기차가 2030년까지 해마다 평균 15%씩 증가해 2030년이면 3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보급 속도에 비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주유소를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도 반기고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스마트보관함 서비스 ‘큐부’로 사업을 확대했다.
정유사들이 주유소의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건 주유소의 한계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수는 2010년 1만3107개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주유소 수는 1만1546개로 10년 사이 1561개 감소했다. 한계상황을 버티지 못한 주유소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지만 여전히 주유소 수는 시장 규모보다 많다는 게 정유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20% 정도는 초과 공급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주유소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국제 유가에 따라 휘발유, 경유 가격 변동이 있긴 하지만 10년 전에 비해 가격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올해 들어 휘발유 가격은 2월 둘째주 ℓ당 평균 1342.71원까지 떨어졌다가 5월 마지막 주 1536.31원까지 올랐다. 이후 다시 떨어져 15일에는 평균 1490.1원을 기록했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인건비 등이 모두 많이 올랐는데 휘발유나 경유를 팔아 남는 마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기존 주유소 인프라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