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원 9명 최근 10년 시급 좌우한 ‘캐스팅보터’… “사실상 정부안” 분석도

입력 2019-07-15 04:06
내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됐다.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 적용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보여지고 있다. 사용자안 8천590원이 15표를 얻어 채택됐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 2020년도 최저임금 8590원은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27명의 표결로 결정됐다. 노사 양측 위원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표결 결과는 상당수 공익위원들이 사용자위원 측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거나 표결에서 공익위원들이 결정적인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상황이 올해도 재현된 것이다.

국민일보가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은 공익위원들이 제시안 방안이 채택된 게 6차례였다. 2차례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 내에서 결정됐다. 나머지 2차례는 공익위원들이 찬성한 방안으로 결정됐다. 공익위원들은 지금까지 2차례 이뤄진 표결에서 한 번은 노측, 한 번은 사측 손을 들어줬다.

현행 최저임금위는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들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추천해 대통령이 위촉한다. 따라서 위원들 성향으로 볼 때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기 쉽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포용사회분과위원장을 지냈다. 윤자영 공익위원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시장소득개선 소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올해 노동계에선 공익위원들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사측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부가 앞장서 ‘속도 조절론’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처음으로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원사격을 했다. 결국 노동계 전망 그대로 공익위원들은 사측 안에 무더기로 표를 줬다.

공익위원들이 정부 입장을 따르는 사례는 2016년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도 나와 있다. 김 전 수석은 2014년 6월 20일자 비망록에서 ‘6월 30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액 결정, 인상률 놓고 대립. 안(案)으로 투표. 7% 인상선’이라 적었다. 실제로 그해 6월 27일 공익위원들은 7.1% 인상률을 제시했고, 이 안이 이듬해 최저임금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는 지난해 공익위원 안으로 전년보다 10.9% 인상된 8350원을 2019년도 최저임금으로 결정했다. 자료를 통해 임금 인상 전망치 3.8%, 소득분배 개선분 4.9% 등이 반영된 수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측 입장에 손을 들어주다 보니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내년도 최저임금 산출 근거에 관한 질문에 “사용자 측에 요청하라”고 답했다.

노동계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위원과 함께 15일 문재인정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파기 선언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한다. 민주노총은 앞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 논평을 내고 “저임금 노동자와 함께 노동개악 분쇄를 위해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