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아버지 원망으로 시작된 잠수타기… 복음 전하며 사랑 품고 떠올라

입력 2019-07-15 00:10

어머니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식당 일을 하셨고,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셔서 집에는 늘 동생과 둘이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외면하고 자는 척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사춘기가 돼 반항했지만 늘 폭언과 폭행으로 돌아와 아예 새벽에 집에 들어가거나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싫은 것을 피하다 보니 친구와 싸우면 대화나 관계를 끊었고 하나님 앞에서도 힘들면 도망치며 살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늘 성경책을 읽고 매일 새벽예배를 다녀오는 친구와 친해져 교회를 따라가다가 얼마 후 여름 수련회에 참석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으로 인정되셨다는 말씀과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마지막 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나를 위한 사랑임을 알게 되자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내게 십자가 사랑은 나를 뜨겁게 했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드리겠다는 결단까지 했다.

바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학교 기독교 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그런데 활화산같이 뜨거운 내 마음과는 달리 복음을 듣는 아이들은 아무 반응 없이 냉랭해 크게 낙심했다. ‘내 신앙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바로 교회를 떠나 잠적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자연히 동아리도 없어졌다. 교회를 떠나자 멀리했던 친구들과 세상의 낙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PC방에 들락거리며 밤새 술을 마셨다. 카드게임을 하고 영화관에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일도 조금만 힘들면 바로 그만두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한 달 만에,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런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교회에서 누렸던 기쁨이 기억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갔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기독교 동아리를 세우고 또 양육을 시작했다. 새벽예배도 열심히 나갔지만 믿음의 확신은 흔들리며 마음은 다시 힘들어졌다. ‘도대체 왜 이럴까? 제자들과 내 신앙의 차이점은 뭘까?’ 고민은 깊어졌고 마침 양육하던 아이들도 하나둘 세상으로 떠나 교회 온 지 2년 만에 또 잠수를 탔다.

신앙도 취업도 실패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그때 한 기독교 방송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이 180도 바뀐 많은 지체의 간증을 보았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마지막 결단으로 다시 교회에 가서 엎드렸다. 요한복음 2장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에야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신앙의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 내 신앙은 증거인 부활을 통한 믿음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부활로 다 보여주셨는데도 나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다. 비로소 나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진정한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이 선명하니 모든 고민도 풀렸다. 다시 잠적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유치부 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양육하기 시작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십자가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증되면서 드디어 부모님을 사랑하게 됐다.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느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하신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들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말끔히 사라지고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우며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매일 눈물로 기도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매일매일 사랑으로 영혼들을 품고 큰 확신 가운데 부활의 복음을 전한다.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나! 오늘도 나는 예수님을 몰라 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리고 포로 되어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든 삶을 드린다. 진정한 부활 증인의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이우진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