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심각한데… ‘30년 일본통’ 총리는 장기 해외출장

입력 2019-07-11 04:02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와 답변하러 단상으로 가고 있다. 왼쪽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종학 선임기자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로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의 비상체제를 선포한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는 오는 13일부터 8박10일간 해외 순방을 떠날 예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일 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한·일 갈등 해소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본통’이자 대통령과 함께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총리와 대일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할 외교 수장이 모두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엄중한 때 정부의 자세가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 총리는 13~21일 방글라데시와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타르를 공식 방문한다고 총리실이 밝혔다. 이날 출국한 강 장관은 16일까지 7일간 에티오피아,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다.

이 총리는 전날 국회 정치·외교·통일·안보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로부터 한·일 갈등 해결에 적극 나서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일본 네트워크가 많은 총리의 역할을 기대한다. 국익을 위해 발벗고 나서 달라”고 하자 이 총리는 “제가 30년 가까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런 국면이 돼 가슴 아프다. 그러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저의 노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일파인 총리가 일본 한 번 다녀오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출신인 이 총리는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하는 등 폭넓은 인맥으로 한·일 관계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온 직후에는 총리 명의의 정부 입장문을 내면서 징용 문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할 해법이 나오지 않았고, 총리실 주관으로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도 줄어드는 등 갈수록 이 총리의 존재감은 작아졌다.

전날 대정부 질문에서 강 장관을 향해서는 한·일 갈등 악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강 장관은 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일본 측과 적절히 협의하지 못해 경제 보복을 당하게 됐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결국은 외교 사안임에도 외교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산업통상자원부로만 대응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정부는 이 총리와 강 장관의 해외 출장이 오래전 결정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상대방 국가들과 6개월 전에 협의된 총리 회담 및 정상 예방 일정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카타르에선 320억 달러(37조8112억원) 규모의 우리 기업 프로젝트 수주전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박한 현안이 생겼을 때 정부 고위급이 해외 방문 일정을 연기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06년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 다급한 외교 현안을 이유로 중미 순방을 연기했다. 2015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포격 도발을 하자 코스타리카 출장 일정을 단축해 조기 귀국했다. 같은 해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응키 위해 미국 방문 일정을 전격 연기하기도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출장 일정을 급하게 조정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총리와 강 장관이 좀 더 한·일 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출장 일정 조정도 안 하니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