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 농산물 수입을 확대해 달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시 주석이 강경모드로 돌아섰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지난해 중국산 제품에 부과했던 고율관세 가운데 일부를 시한부로 철회한 가운데 시 주석의 입장 변화가 곧 재개될 미·중 무역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시 주석은 오사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농산물 수입 확대 요구를 받았으나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소식통을 인용해 10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않았으며 실제 정상회담 후에도 중국의 미국산 농산품 구매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시 주석의 이런 태도는 미국산 제품 수입을 늘리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던 이전 분위기와 다른 것이어서 향후 재개되는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강경모드로 돌아설 수 있다고 SCMP는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관세 부과를 보류하고 그들(중국)은 농산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중국 측 발표에는 미국 농산물 수입과 관련한 시 주석의 언급이 없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은 관세 부과 보류와 농산품 구매라는 딜이 이뤄졌다는 취지로 해석됐으나 사실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미국은 계속 중국 측에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BC방송이 개최한 행사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시 주석이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신속히 진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즉각적인 농산물 구매를 촉구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미국산 농산물 구매나 무역협상 합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시간표는 없다며 “속도보다는 질”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9일(현지시간) 의료기구와 전자장비 등 중국산 제품 110개 품목에 부과된 25% 관세를 향후 1년간 면제한다고 연방 관보를 통해 밝혔다. 대상 품목은 미국이 지난해 7월 6일 무역전쟁을 시작하며 25% 관세를 물린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일부다. 관세 부과가 오히려 미국 기업들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USTR은 면제 기준으로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제품인지, 이를 수입하는 미국 기업의 피해가 심각한지, 중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에 전략적으로 중요한지까지 세 가지를 따졌다고 설명했다. USTR은 지난해에도 1000개 정도 품목에 대한 관세 면제를 결정했으며, 올해 5월까지 관세 면제 요청 약 1만3000건 가운데 5311건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단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오사카 회동 이후 처음으로 전화 접촉을 가졌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류허 중국 국무원 부총리 및 중산 상무부장과 담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 관리는 “양측은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고위급 협상단이 대면 협상 일정을 잡았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