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을 겨냥해 ‘전방위 반격’에 나섰다. 당장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 문제제기를 하며 본격적인 국제 여론전에 돌입했다.
정부는 10일 새벽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추가 안건으로 긴급 상정하고 정부 입장을 밝혔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이사회에서 WTO 회원국들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대한민국 한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명백한 보복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경제 보복이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WTO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이 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한 직후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모순적인 행태임을 지적하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백 대사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근거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이번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요청했다. 아울러 일본이 주장하는 ‘신뢰 훼손’과 ‘부적절한 상황’은 현재 WTO 규정상 경제 보복 조치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에도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초래해 자유무역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는 점을 제기했다.
정부는 통상 공사나 참사관급이 참석하는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백 대사를 직접 보내 사안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WTO 제소를 앞두고 국제기구와 관련 국가에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고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북한 관련 발언에 대해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가 북한에 반출됐다는 증거를 대라고 받아쳤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유출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일본 정부에서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도 유엔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되레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시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은 근거 없는 주장을 즉시 중단하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전날 BS후지TV의 여야 당대표 토론회에 참석해 꺼낸 발언을 지목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수출 규제 소재 3가지 가운데 반도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반출을 제한한 이유로 ‘북한’을 들었다. 북한에 해당 소재가 유출됐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한국으로 간 고순도 불화수소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행선지를 북한으로 단정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된다.
정부는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성 장관은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불화수소 수입·가공·공급·수출 흐름 전반을 긴급 점검했다.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을 박았다. 이어 “의혹 제기는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를 높이 신뢰하는 국제사회의 평가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국가 간 생화학무기 물자·기술 이동을 제한한 호주그룹에 1996년 가입했다.
앞서 외교부는 8일 주한 일본대사관의 참사관급 관계자를 불러 항의 뜻을 전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최승욱 전성필 임성수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