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 압박 시동… 한·일문제서 국제문제로 부각

입력 2019-07-10 04:10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에칭가스(불화수소)’ 북한 반출 의혹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성 장관은 “이웃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근거 없는 주장을 즉시 중단하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권현구 기자

한·일 무역갈등이 ‘국제사회 문제’로 다뤄진다. 자유무역의 첨병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이사회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일본은 WTO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자국 조치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또 꽉 막혀 있던 한·일 양자 대화채널이 일부지만 숨통을 틔웠다. 통상 당국 실무진이 이번 주에 만난다. 수년간 명맥이 끊겼던 통상분야 양자 실무협의 재개다. 다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완강하게 나오고 있어 양자 협상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8~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참석해 일본 수출규제를 긴급 안건으로 제안했다. WTO 상품무역이사회는 회원국 간 원활한 무역을 돕는 역할을 한다. 과거 필리핀의 쌀 관세 의무 한시면제 등의 안건을 승인한 바 있다.

정부 스탠스는 명확하다. 한국을 정밀 조준해 내린 수출제한 조치는 WTO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조치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 기업은 물론 일본 기업, 글로벌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한국이 상정한 안건은 이사회에 참석한 회원국이 공유하고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다자 구도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오는 23~24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일본의 부당성을 밝힐 계획이다. 2, 3개월에 한 번씩 개최되는 일반이사회는 상품무역이사회보다 높은 대사급 참석 회의다. 외교부 당국자는 “WTO는 만장일치제라 합의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지만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 여론을 환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자 구도와 별개로 양자 협의도 진행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오는 12일 오후쯤 양자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조율 중”이라며 “실무진 대표급을 어느 수위로 할지와 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조율 업무는 주일 한국대사관에 파견 나가 있는 상무관이 맡았다. 일본 경제산업성 실무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양자 협의를 제안해 지난 8일 답을 받았다. 양국 통상 당국 실무진이 협의석상에 앉기는 2016년 6월 이후 3년 만이다.

하지만 실무진급 협상만으로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성 장관은 “우리 쪽은 철회 요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전성필 이상헌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