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사진)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결국 한 발짝 물러섰다. 람 장관은 송환법이 “죽었다”고 밝히면서 법안 재상정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홍콩 시위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뚜렷해지자 민심 수습을 위해 전향적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람 장관은 송환법 제정 추진을 공식적으로 폐기할 것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아 사태가 진정 국면을 맞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람 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송환법 제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며 “법안은 죽었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람 장관은 “정부가 입법회(국회) 절차를 다시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이 여전히 있다”며 “반복해서 말하건대 그럴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람 장관은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격화되자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앞서 밝힌 바 있다. 람 장관은 당시 이번 입법회 임기가 끝나는 2020년에 “송환법은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위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때보다 더욱 진전된 언급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람 장관은 경찰의 과잉 진압을 지시한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독립기구인 ‘경찰불만위원회(Police Complaints Council)’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에는 시위대와 경찰, 언론 등 모든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과 조건 없는 ‘열린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다만 람 장관은 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인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때문에 홍콩 시위가 어느 정도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법안을 다시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범민주파인 공민당 소속 앨빈 영 입법회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죽었다는 말은 정치적 발언일 뿐이지 법률적 표현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위 지도부도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람 장관이 시위대와 직접 대화는 하지 않고서 위선적인 발언을 내놨다는 것이다. 보니 렁 시민인권전선 부의장은 AP통신에 “람 장관은 밖으로 나와 젊은 시위대와 마주보고 대화해야 한다”며 “젊은 시위대는 지난 몇 주 동안 홍콩시내와 람 장관의 관저, 정부청사 등지에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촉구해 왔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