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펀드매니저 억만장자 미성년 성범죄로 또 체포… 이번에도 감형?

입력 2019-07-10 04:05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66·사진)의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이 미국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엡스타인은 과거에도 똑같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도 불기소 처분을 받은 인물이다. 특권층에 대한 감형 특혜 논란이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 등은 8일(현지시간) 뉴욕남부지검이 엡스타인을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 뉴저지 테터보로 공항에서 전격 체포된 엡스타인은 20여명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피해자의 나이는 고작 14세에 불과했다.

연방검찰은 기소장에서 “엡스타인은 뉴욕 맨해튼, 플로리다 팜비치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의도적으로 미성년 소녀들에게 접근했고 (성인 기준인) 18세 미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검찰은 엡스타인이 2002~2005년 마사지를 명목으로 소녀들을 모집한 뒤 이들을 만나 수위 높은 성적 행위를 이어갔다고 보고 있다. 맨해튼에 있는 그의 초호화 자택에서 찾아낸 외설적 사진들이 증거물로 제시됐다. AP통신은 “수백장에서 많으면 수천장에 달하는 사진이 발견됐다”며 “젊은 여성과 소녀들을 찍은 나체사진들도 있다”고 전했다.

초부유층인 엡스타인의 성범죄는 특권층에 대한 법률적 특혜 논란을 촉발시켰다. 엡스타인은 11년 전에도 최소 36명의 미성년자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검사와의 감형 협상(플리바게닝) 끝에 고작 1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마저도 사설 감옥에서 복역했고, 일주일 중 6일의 하루 12시간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 석방’ 제도 특혜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 마이애미헤럴드가 11년 전 연방 검사팀과 엡스타인 변호인단이 유착 관계였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특혜 논란이 확산됐다.

현 미국 노동부 장관인 알렉산더 어코스타가 당시 수사팀 지휘 책임을 갖는 플로리다 남부 지검장으로서 감형 협상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미국 정계를 뒤흔드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이 엡스타인 기소 관련 공식 논평을 내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에서 피해 여성들의 의회 증언을 독려해 ‘어코스타의 감형 협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을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문제의 초점이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도덕성 문제로 옮겨질까봐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엡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영국의 앤드루 왕자 등과 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2년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에 대해 “멋진 녀석이다. 같이 어울리면 정말 재미있다”고 표현했다. 또 “그는 심지어 나만큼 미녀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편”이라며 엡스타인의 미성년 성범죄를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엡스타인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렸다.

유죄가 인정된다면 엡스타인은 최대 4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는 법정에 출석해 “여성들과의 접촉은 동의하에 이뤄졌고, 18살로 알고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11년 전에 마무리된 사안을 검찰이 재탕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