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은 서울 등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대료 상승으로 원래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내쫓기는 일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긍정·부정 효과를 모두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다. 초기에 사람이 몰리면 지역환경이 개선되고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자본도 유입되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한다. 하지만 집값이나 임대료가 올라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을 몰아낸다. 저렴했던 주거지역이 영원히 사라지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난다. 대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실향민’ 신세로 전락할 정도다.
그런데 파급효과가 큰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떤 지역에서 심각해지고,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살펴볼 자료가 부족하다. 사회 현상을 특정 수치로 치환하기 어려워서다. 국토연구원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정도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를 개발했다. 서울의 자치구별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시계열 분석’도 했다.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어느 지역에 초첨을 맞춰야 하는지를 볼 수 있는 셈이다.
12일 국토연구원의 ‘어느 동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마포·광진·도봉구다. 마포구의 ‘위험’ 단계 비율은 2015년 0.28%에서 지난해 2.56%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광진구와 도봉구의 위험 단계 비율도 각각 0.48%에서 2.28%, 0.54%에서 1.95%로 상승했다.
국토연구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역이 부유화·활성화하면서 고소득·고학력 인구가 유입되고, 기존에 거주하던 사회·경제적 취약 인구가 외부로 밀려나는 과정’이라고 정의 내린다. 기존 거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라고 막연하게 알려진 데 비해 한층 구체적 의미를 더했다. 이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기 전 상황부터 심각해지는 시기까지 4단계(초기, 주의, 경계, 위험)로 구분했다. ‘경계’와 ‘위험’ 비율이 증가할수록 기존 상인이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경계는 상권 활성화로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는 단계, 위험은 임대료 상승으로 공실이 늘면서 지역 쇠퇴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단계다.
위험 단계 비율이 높아진 지역의 특징은 ‘대학가 상권’ ‘지하철 노선 따라가기’다. 마포구 홍익대, 광진구 건국대, 성동구 한양대 등은 대학가를 중심에 두고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다. 대학가 상권에 ‘공동화’ 위험 징후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진희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자치구 단위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노원구, 동대문구, 성북구에서도 서울과학기술대, 경희대, 국민대 등 대학가에선 국지적으로 경계·위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로와 지하철 노선을 따라 확산됐다. 특히 지하철 노선을 따라 ‘선 형태’로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였다. 구로구와 관악구는 신도림역부터 낙성대역까지 연결된 서울지하철 2호선을 따라 위험 단계가 선 모양으로 집중됐다. 동작구는 7호선을 따라서, 강북구와 도봉구에선 두 지역을 연결하는 노해로를 따라 경계·위험 단계가 몰렸다. 이 연구원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 기반 구축과 부작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관련 제도 및 가이드라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전체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015~2018년까지 경계·위험 수준이 각각 높아졌다. 경계 수준은 2015년 8.01%에서 지난해 9.04%로, 위험 수준은 2015년 0.47%에서 2018년 1.25%로 3배가량 증가했다. 서울 전체의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정도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연구원은 서울을 6만8000여개의 구획으로 쪼개 매출액, 유동인구, 프랜차이즈 업체 수, 창·폐업 횟수, 평균 영업기간, 상주인구 등 변수를 적용했다. 미국 여러 주에서 진단을 위해 개발한 통합지표에서 활용한 변수 중 국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을 측정할 수 있는 변수를 뽑았다.
국토연구원의 이번 연구에도 부족한 점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디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고, 왜 심화하는지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역세권이기 때문에 지하철 노선을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고, 상권이 단기간에 활성화하면서 문제가 심화했을 수도 있다.
전국을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서울의 경우 블록 단위 자료가 축적돼 있어 상권 단위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반면 지방은 지표를 적용하기에 기초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 연구원은 “서울 등 대도시 외 지역은 아직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 전국 단위 분석을 위해선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료를 지속해서 수집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각 지역에서 수집된 자료를 통합해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을 줄일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