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와 관련해 8일 “한국의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서도 차분하게 노력해 나가겠다”며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거세지면 맞대응하겠다고 경고하는 동시에 양국이 이번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호혜적인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며 “무역은 공동 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경제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비화할 경우 한·일 관계가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그동안 맞대응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에 대한 우려를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다. 일본의 보복을 ‘정치적 목적’으로 규정하고, 한국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될 경우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다만 ‘강 대 강’ 대치로 간다면 양국 모두에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라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우려하면서 협의를 제안했다.
청와대는 한국 국민과 일본 정부 양쪽을 향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이라 정부가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또 하나는 일본을 향한 것으로 양국의 우호 관계 훼손을 막기 위해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하고, 조치를 철회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한 상황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경제계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라며 “상황 진전에 따라서는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대응체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체질 개선에 착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적 대응과 처방을 빈틈없이 마련하겠다. 한편으로 중장기적 안목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한·일 무역 관계도 더욱 균형 있게 발전시켜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조치 철회 요구에 대해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측이 구체적으로 개선 조치에 나서지 않을 경우 수출 규제의 해제는 없다”고 밝혔다고 NHK가 전했다. 또 교도통신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용으로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집권 자민당 관계자의 견해를 전했다.
다만 일본 주요 언론들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했다. 수습 국면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이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발언을 환영했다.
임성수 장지영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