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로키(low-key, 낮은 수위) 행보를 접고 전면에 나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7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 회동을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10일 30대 기업 총수들과 만나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 건의도 받을 예정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7일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며 “향후 적극적으로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5일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5대 기업 총수들과 회동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7일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늦게 일본으로 출국했는데 오찬 회동을 소화한 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전날 일본 출장 일정이 잡혀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미리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회동 참석자와 기업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 기업이 청와대와 구체적으로 대응책을 논의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일본이 ‘표적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안을 고려해 회담도 청와대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대응 카드가 모두 공개될 경우 일본의 전략에 역이용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영향을 끼쳤다.
청와대는 다만 정부 대응이 정치적 갈등이나 외교적 분쟁으로 확산되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다시 해결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정치 갈등을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과 30대 기업 총수의 만남도 경제적 관점으로만 국한하겠다는 게 청와대 구상이다. 일본의 보복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이를 막기 위한 정책적 대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 정책 책임자들이 기업을 만나 요구를 듣고 정부의 후속 대응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국익 관점에서 문제를 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대통령 메시지도 우리의 정책적 대비와 기업 환경 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8일 최재성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일본 경제보복 대응특별위원회’(가칭)를 발족해 맞대응 전략을 마련키로 했다. 청와대가 외교적 문제 등을 고려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을 두고 일본에 비판적인 국제 여론이 감지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검토하는 우리 정부에 나쁘지 않은 기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일 분석 기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무역 제한’을 경제·외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술집을 모방했다”며 “이번 조치로 아베 총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자유무역주의자 이미지를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나온다.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던 일부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신재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