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짓기도 힘든데… 소재 국산화, 규제부터 풀어야

입력 2019-07-08 04:04

일본이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그동안 소재 국산화가 더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규제를 꼽았다.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의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 매년 1조원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경쟁력을 갖추려면 관련 설비 증설 등에 적용되는 규제의 완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7일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는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대응 방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필수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국산화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2012년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강화된 환경 규제를 지적했다. 에칭가스는 반도체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액으로 사용된다. 반도체 생산공정의 주요 소재지만 사고 이후 정부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공장 증설이 어려워졌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화확물질 관련법이 엄격해진 현재 상황에서 불산과 같은 사업을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며 “반도체 소재 국산화는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대내적인 환경규제, 여론을 의식하며 규제 완화에 나서지 못하는 정권의 의지 문제”라고 전했다.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은 “환경이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 규제가 강화되다보니 공장 인허가 문제라든지 설비 증설에 업계가 어려움를 겪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환경 문제도 중요하지만 한국 정부의 규제 수준은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다소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환경운동연합 측은 “현행 규제는 여전히 환경·안전 측면에서 최소한의 규제”라며 “최근 인명 피해를 내는 화학물질 사고가 연일 터지고 있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환경·안전 문제에 나서지 않는 이상 법적 규제는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소재·장비 국산화는 기술·개발(R&D)에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공동연구소 등 국가 차원에서 기반시설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연구회는 “기초적인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공동연구소를 만들어 업체들이 함께 기술 초기 개발과 재료 개발, 특허 확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소재 국산화가 제품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현재 전 세계는 소재와 제품 생산이 분업화돼 있다”며 “소재 국산화가 꼭 필요한 것인지, 원가경쟁률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안정적으로 국산화를 이뤄온 배터리 분야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는 부품·소재의 국산화 비율이 비교적 높지만 주원료의 일부는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크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