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해 단행한 ‘강제징용 판결 경제보복 조치’의 이유로 북한과의 관련성을 시사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7일 보도했다. 자국 내에서조차 경제보복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자국의 화학물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억지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보복조치를 단행하며 ‘한국과의 신뢰관계’ ‘수출 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베 총리가 직접 북한 관련성을 언급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BS후지TV가 주최한 여야 당대표 토론회에서 한국에 대한 반도체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의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을 들며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무역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다”며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화학물질이 대량살상무기 제조 목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 것이냐’는 취지의 후속 질문에는 “개별적인 사항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싶다”고 답을 얼버무렸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의 앞선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 하기우다 대행은 지난 4일 BS후지TV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북한행을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됐는데,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북한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아베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자국 내에서조차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북한을 끌어들여 이번 경제보복 조치를 안보 문제라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각 당 대표들은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를 이구동성으로 비판했다. 특히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개헌세력으로 묶이는 일본유신회까지 아베 총리의 발언을 지적했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신뢰관계가 손상됐다면 정부가 할 일은 (보복이 아니라) 타협”이라고 지적했다.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 일본유신회 대표는 “안전보장상 문제가 있다면 미국의 힘을 빌려 북한에 압력을 걸어야 할 일”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앞서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은 각각 ‘보복을 즉각 철회하라’ ‘서로 불행해질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일 양국의 경제에 악영향만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극우 언론인 산케이신문조차 일본 기업에 수출 규제로 인한 여파가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