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노동자 송환을 촉구하는 미국의 조치에 강력 반발했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양측이 기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이 겉으로는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속내는 비핵화 협상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제재가 풀리기를 원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주유엔 북한대표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다”며 “제재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고 제재와 압박에 집착해 미국이 계속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성명은 미국 등 4개국이 북한 해외 근로자의 본국 송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 회원국에 보낸 데 따른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르면 북한에서 송출한 해외 노동자들은 오는 12월 22일까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외 노동자 송출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북한대표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판문점 회동을 제안한 지난달 29일 이 서한이 작성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이 대화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제재를 옥죄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성명을 통해 앞으로의 실무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제재 완화나 해제를 받아내려 하는 것으로 관측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4일 “북한이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움직인 것 같다”며 “일종의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은 제재 해제를 원하는 게 맞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속내를 너무 보여서 지금은 감추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제재 해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제재의 충격이 누적되고 있어 힘든 게 사실”이라며 “본심은 제재 해제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북 제재를 협상력을 강화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보고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새로운 카운터파트로 김명길 전 주베트남 북한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 측에 새 실무협상 대표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북한이 실무협상 책임자를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 인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이 적격”이라고 말했다고 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김 전 대사는 북핵 6자회담에 관여했고 미국 관련 사안을 다뤘던 인사여서 실무협상 대표로 유력하다는 게 고스 국장의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리동일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이 협상 대표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손재호 이상헌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