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 ‘난 소통하고 있다’ 착각”

입력 2019-07-05 00:05 수정 2019-07-05 14:15
김혜진 갈등관계심리연구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반지하에 사는 궁핍한 가정의 미대 재수생 기정은 미국 명문대 출신 미술치료 선생이라 속이고 부잣집 막내아들 과외선생으로 들어간다. 장난기 가득하고 산만했던 10살짜리 막내아들은 기정을 만난 지 단 몇 시간 만에 기정의 무릎에 앉아 고분고분 수업을 듣는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김혜진(43) 갈등관계심리연구소장은 이 장면을 “기정은 비록 사기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를 좋아해 진심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한다”며 “그게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 뉴욕대서 미술치료로 석사학위, 컬럼비아대에서 특수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소장은 그동안 미술임상심리 및 특수교육 전문가로서 각종 폭력으로 상처받은 장애인과 아이들을 위한 상담을 해왔다. 19대 국회에서는 의원 비서관으로 활동하며 아동·청소년 교육, 성폭력, 학교폭력에 관한 법안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원래 관계는 어려운 거야’란 책을 냈다. 그를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폭력 등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해오며 사람들 문제의 대부분은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고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2017년 가을 그에게 대상포진이 발병했다. 이는 만성 통증으로 이어졌고 1년 반을 앓았다.

그는 “그렇게 직접 아파보고 나서야 다른 이의 아픔도 제대로 알게 됐다”면서 “그동안 마음이 아프고 학대당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다가 막상 제가 어둠의 터널을 지나다 보니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새벽기도를 나가며 받은 마음과 자신의 경험을 이 책에 녹여냈다. 그는 “정말 힘들 때 나를 잡아주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걸 처절하게 깨달으면서 그동안 만난 피해자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면서 “내가 과연 그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음과 사랑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현대 사회의 문제도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만 할 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며 “영화 ‘기생충’의 주제도 결국은 ‘관심과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영화 속 상류층 주인공이 상대방의 진실성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비극적 결말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망고가 먹고 싶지만 비싸서 잘 못 먹는다는 성폭행 피해 아동에게 필요했던 건 망고보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은지를 물어봐 주는 사람이었다”며 “이들과 마음을 터놓으려면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나부터 행복해지는 것,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서 관계의 회복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조금씩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모난 부분이 깎여 나가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내면의 힘이 차곡차곡 쌓이면 남을 돌아볼 힘도 생긴다”고 조언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