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권하는 병원… ‘방어진료’ 권하는 의료수가

입력 2019-07-07 19:00
전문가들은 “분만 과정에 대한 수가를 현실화하고, 사고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야 안전한 분만 인프라가 유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일보DB

제왕절개 분만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분만 방법을 두고 산모와 의료진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고령 및 고위험산모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 중 사망 위험, 진료 일정 등 의료기관의 사정이 맞물려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를 보면,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연간 분만 건수는 모두 감소하고 있으나, ‘제왕절개 분만율’은 늘고 있다. 2016년~2018년 9월까지 출산한 기혼여성 1784명을 대상으로 분만방법을 조사한 결과, 제왕절개 분만율은 42.3%로, 2015년 조사결과(39.1%)보다 3.2%p 높았다. 산모의 연령이 높을수록 제왕절개 분만율은 더 높았다. 연령별로 25세 미만은 38.2%, 25∼29세 38.6%, 30∼34세 39.7%인데 반해 35∼39세에는 46.6%로 증가했고, 40∼45세의 경우 64.8%였다.

고령 임산부라고 해서 꼭 제왕절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최규연 산부인과 과장은 “산모의 연령이 높을수록 내과적 합병 질환이 많고 산과적 합병증 발병 위험과 난산 가능성이 높아 제왕절개술을 시행하는 경향이 많다”며 “하지만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수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통계적으로도 자연분만 사망률이 더 낮고, 단순 비교해도 제왕절개는 수술에 따르는 마취 및 수술 자체에 합병되는 위험성이 정상 자연분만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왕절개 분만이 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방어진료’가 꼽힌다. 출산 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병원 입장에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제왕절개술을 권유한다. 자연분만 도중 산모가 사망하면, 제왕절개를 빨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 다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안전한 출산’을 이유로 제왕절개 분만을 권유받았다는 산모들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43살(2018년 당시)이라고 밝힌 B씨는 “의사가 제왕절개 아니면 (분만을) 안 할 거라고 했다. 집 주위에 대학병원은 이곳밖에 없고 다른 곳을 가려면 1시간이나 차를 운전해서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분만 과정에 대한 낮은 의료수가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규연 교수는 “현재 분만 감시 과정에 대한 수가는 분만실을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턱 없이 낮게 산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과의사들이 분만에 따른 위험부담에 너무 노출돼 있다. 제왕절개 수술은 수술 날짜만 잡으면 그날 분만이 가능하지만 자연분만은 24시간 의료진이 대기해야 한다. 또 언제 분만이 될지 모르고, 그사이에 어떤 응급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분만까지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라며 “분만 과정에 대한 수가를 현실화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야 안전한 분만 인프라가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