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밥 대신 빵… ‘도시락 품앗이’ 나선 학부모들

입력 2019-07-04 04:02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2만2000여명이 파업에 들어간 3일 텅 빈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영양교사 한 명이 빵과 주스 등 대체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2만2000여명(교육부 집계)이 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아침 8시면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사들의 손놀림이 한창 바쁠 때지만 이날은 급식실 전체에 불이 꺼진 채 적막감이 흘렀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받아든 메뉴는 포장된 소보로빵과 브라우니, 푸딩, 포도주스였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친구들과 나눠먹는 학생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서울 은평구의 다른 초등학교에서는 영양사 혼자 소보로빵 박스를 옮기고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전 11시쯤 출근한 배식 도우미들이 빵과 곡물에너지바, 아이스홍시, 감귤주스 등으로 짜여진 식사를 각 학급으로 날랐다. 평소 이 학교 급식실에서는 영양사 포함 6명의 급식 조리사들이 매일 65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학교 측은 파업에 대비해 5일까지 간편식 위주로 대체식단을 짜둔 상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첫날 일선 학교 곳곳에서는 이렇듯 급식과 돌봄교실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다. 급식·돌봄 대란이라 불릴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학부모들은 되풀이되는 파업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파업 여파로 4교시 단축수업을 한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는 낮 12시가 되자 자녀를 데리러 온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4학년생 자녀를 둔 박모(39)씨는 “오후 출근 전 아이에게 도시락을 주려고 왔다”며 “다른 아이 3명의 도시락도 부탁받아서 같이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학교는 일찍 끝나는데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부랴부랴 연차를 낸 엄마들도 있다”며 “학생들 먹는 문제를 볼모로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학교 인근 편의점 앞 테이블은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아이들로 꽉 찼다. 바로 옆 분식집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분식집 사장 엄모(50)씨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미리 연락해온 엄마들이 많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와 준비했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가 학생들을 학원으로 데려가 점심을 먹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축 수업을 실시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한 중학교는 소보로빵과 소시지빵, 음료수가 점심으로 제공됐다. 원래는 보리밥·두부된장찌개·오향장육·콩나물무침·배추김치로 짜여진 식단이 예정돼 있었다. 한 남학생은 “파업을 하는 분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점심으로 빵만 먹기에는 부족하다”며 “집에 가서 밥을 더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빵과 도시락 등으로 점심을 대체했지만 큰 불편은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기북부의 한 고등학교 교감은 “밥 대신 나눠준 빵과 우유를 오히려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일부 학생들은 양이 적어서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업무를 일시적으로 떠맡았다. 충북 지역의 초등교사 박모(35)씨는 “파업이 진행되는 3일 동안 교사 10명이 3~5시간씩 나눠 돌봄교실을 지키기로 했다”며 “평소 하던 일이 아니어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지 부담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조모씨(30)는 “평소보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급식·돌봄 선생님들의 근로 환경을 알기에 파업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파업 기간이 더 길어지지 않을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구인 조민아 황윤태 기자, 대구=최일영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