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중반(2.6~2.7%→2.4~2.5%)으로 낮추면서 물가 수치도 대폭 낮췄다. 1.6%였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0.9%까지 내려갔다. 저성장과 저물가로 경상 GDP(실질 GDP+물가 변동분 반영) 성장률 전망치도 3.9%에서 3.0%로 주저앉았다. 실질 GDP보다 물가가 반영되는 경상 GDP 전망치의 하락 폭이 더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 체감경기는 한층 나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3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경상 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이 자주 구매하는 460개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소비자물가 전망을 대폭 조정한 건 ‘저물가 기조’를 반영한 조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6개월째 ‘0%대’에 맴돌고 있다.
정부는 저물가 원인을 공급 측 가격 억제로 본다. 정부는 전기·수도·가스요금, 의료비, 통신비, 교육비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도록 관리한다. 소비자물가지수 조사대상 품목 460개 중 관리 물가 대상은 40개로 추정된다. 관리 물가 품목들이 전체 물가 상승률을 끌어내린다는 얘기다. 통신비·진료비·공공요금·급식비 등이 포함되는 ‘공공 서비스’ 가격은 올해 1월에 -0.3%로 ‘마이너스’ 전환된 뒤 6월(-0.2%)까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공공 서비스 물가가 마이너스를 보이기는 2012년 2월(-0.5%)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수요 측 문제도 있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상품을 사려는 수요가 없어져 물가가 하락하면 생산·고용 위축,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촉발한다. 정부가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0%대까지 낮춘 건 공급 측 문제가 크다고 보면서도 일부 ‘수요 위축’ 현상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저물가와 경기 부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할 수 있다. 경제 주체들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투자와 소비를 미룰 수 있다. 최근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 상승률 전망)가 계속 높아지는 건 이런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다 경상 GDP 전망치 하락은 좋지 않은 신호다. 실질 GDP에 물가 변동을 반영한 경상 GDP는 ‘체감 경기’에 더 다가서는 지표다. 실제 국민이 손에 쥘 수 있는 소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경상 GDP 하락 배경에도 상품·서비스의 가격 하락이 있다. 올해 GDP 디플레이터(경상 GDP/실질 GDP) 상승률은 다른 물가지표처럼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에 담기지 않는 수출품, 투자재 등 더 큰 범위의 가격 수준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직접 구입하는 품목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의 가격 하락이 경상 GDP에 영향을 준다.
경상 GDP는 가계대출, 정부 재정지출 규모, 세수 추계 등의 기준이 된다. 특히 정부는 향후 5년 동안의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매년 발표하는데 세입과 국가채무, 지출 규모 전망치 설정에 경상 GDP를 참고한다. 올해 들어 세수 호황이 꺾이고 있는데, 경상 GDP 하락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5개년 국가재정운영계획 발표 때 경상 GDP 성장률 전망치 수정과 국민계정통계의 기준년도 개편에 따른 GDP 규모 변화 등을 종합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