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약속 안 지키는 국가 우대 못해”… 사실상 보복 인정

입력 2019-07-04 04:02
사진=AP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총리가 자국 언론마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조치를 비판하자 “징용공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문제”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반하는 조치가 아니다”라고 3일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여야 7당 당수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일본 NHK방송 등이 보도했다. 하지만 오히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언급해 사실상 보복조치임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대부분의 일본 신문들은 이날 사설을 통해 이번 조치가 일본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보복을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배경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는 아니라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다”며 “(이번 조치가) 일본의 신용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한·일 양쪽의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텐데도 이런 모순적 설명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도쿄신문도 ‘서로 불행해질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도쿄신문은 “강제징용 문제는 외교 협상을 거듭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수출 규제로 긴장을 높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면서 “이번 조치로 한국 기업의 탈(脫)일본이 진행되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과거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겪은 사실을 언급하며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수출 제한이 정치적·외교적 문제를 해결할 특효약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일본 정부의 조치가 일본 기업에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설을 실었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도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신문은 특히 이번 조치가 WTO 협정 위반 소지가 크며 일본 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실었다.

아베 총리가 애독하는 것으로 알려진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조차 이례적으로 일본 기업에 수출 규제로 인한 여파가 미칠 수 있다면서 우려감을 드러냈다. 신문은 온라인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반도체 부품 출하가 막히면 낸드플래시 메모리 등을 사용하는 일본 전자업체들의 생산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국대사는 한·일 갈등이 깊어지자 전날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지지통신의 내외조사연구회 주최 강연회에서 해거티 대사는 “한국·미국·일본 세 나라의 관계 강화가 대북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 이후 미국 고위 관리가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해거티 대사가 처음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