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일 외교갈등으로 촉발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이틀째 침묵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을 자국 내 여론 결집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고 최대한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사진)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보복 조치를 발표한 주체가 일본 경제산업성이어서 급을 맞춰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응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가 간 문제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며 “향후 입장이나 발표는 산업부를 통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도 수시로 산업부의 보고를 받고 물밑에서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자국 선거를 앞두고 경제 보복 이슈를 키우는 상황에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이 더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조치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본의 규제가 사실상 수출 제한인지 등을 명확히 파악한 뒤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서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정부 대응은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보복 성격의 대응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선 한·일 무역갈등이 결국 일본에도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일본이 계속 강경 기조를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단순한 경제 이슈를 넘어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촉발된 외교 문제라는 점에서 청와대가 계속 로키 모드를 고수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야권은 청와대가 일본의 보복에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현 정권은 일본의 강력한 통상 보복 조치에 수수방관 중”이라며 “한·일 관계에서 실익 우선이 아닌 이념적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아마추어, 무능외교 비판을 받아온 외교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악화된 한·일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