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입법회 점거에 중국 ‘폭력’ 규탄하며 강력 대응 예고

입력 2019-07-03 04:04
홍콩 경찰관들이 2일 홍콩 의회 격인 입법회 청사 출입구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안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전날 홍콩 반환 22주년을 맞아 입법회 청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다 이날 새벽 해산했다. 건물 유리창과 벽면에 ‘구관(狗官·탐관오리)’이라고 적은 스프레이 낙서가 눈에 띈다. AFP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입법회 내부까지 진입해 점거 시위를 벌이면서 홍콩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 정부는 ‘폭력 사건’으로 규탄하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홍콩 주권 반환 당사국인 영국은 홍콩 시민의 자유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반정부 시위를 옹호하면서 홍콩 사태는 외교전으로 번지고 있다. 홍콩 시위가 향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은 2일 ‘책임자’ 명의의 담화에서 “1일 입법회 건물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경악하고 분노한다”며 “그들의 폭력은 홍콩 법치에 대한 극단적 도전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 홍콩 주재 사무소도 담화를 내고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을 겨냥해 “홍콩과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홍콩과 중국 정부, 인민은 외국 세력이 중국의 주권 안전과 홍콩의 번영 안정을 해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정례 브리핑에서 “(폭력 시위는) 법치를 훼손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심각한 위반 행위”라며 “중앙 정부는 홍콩 정부와 경찰이 법에 따라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 거론되는 제레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약속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홍콩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영국은 1997년 7월 1일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고 향후 50년 동안 일국양제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다. 헌트 장관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며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헌트 장관은 “우리는 홍콩 시민을 확고히 지지한다”며 “만약 국제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협정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홍콩의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해 “나는 그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일부 정부는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며 중국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더 나은 것은 없다”면서 홍콩 사태에 대해선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이 폭력 사태로 규정한 홍콩 시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홍콩 문제를 쟁점화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홍콩 시위가 시 주석의 독재적인 통치에 대한 개인적 도전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홍콩 반환 22주년이었던 1일 시위에서는 홍콩 시민 55만여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송환법 철회와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54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았으며 3명은 중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시위대는 입법회 건물 입구를 부수고 회의장에 진입해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2일 새벽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의회를 빠져나갔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