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북핵 동결론’ 솔솔… 비핵화 골문 넓히나

입력 2019-07-03 04: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긴급 국경 지원안’ 서명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왼쪽) 부통령, 알렉스 아자르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은 이날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급증하는 이민자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46억 달러(약 5조3153억원) 규모의 국경 지원안에 서명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동으로 비핵화 실무협상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미국의 새로운 대북 협상안으로 ‘핵 동결론’이 대두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 동결론을 즉각 부인했다. 핵 동결은 현재 상황에서 핵시설을 멈춰 새로운 핵물질 생산을 제한하지만, 이미 보유한 핵무기는 폐기하지 않고 유지된다. 이에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1일(현지시간) 북한의 핵 동결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 협상 전략이 논의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며 “우리는 현재 어떠한 새로운 제안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이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계자가 핵 동결을 새로운 비핵화 협상안으로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일각에선 2020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적 쌓기를 위해 비핵화 목표치를 낮춰 북한과 타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 최종상태(엔드 스테이트)로서 핵 동결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핵 동결을 위한 논의를 했거나 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NYT 보도를 부인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완전한 추측”이라고 말했다. 다만 핵 동결은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입로에 포함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 협상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핵 동결이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하나의 과정은 맞지만 엔드 스테이트가 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일 “북핵을 폐기하려면 핵 동결은 해야 하지만 핵 동결만 포함되는 딜은 좋지 않다”며 “포괄적 합의에서 핵 동결이 첫 번째 단계이고 이후 과정을 거쳐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면 좋겠지만, 핵 동결만으로 거래가 이뤄진다면 핵보유국으로 가려는 북한 외교의 승리”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핵 동결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지만 기존 핵무기에 대한 폐기는 없는 것”이라며 “핵 동결로 제재 완화를 해줬는데 기존 핵무기로 위협을 하면 어떡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기 단계인 핵 동결은 신고와 검증이 동반되는 절차라 북한이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북·미는 이달 중순 재개될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핵 동결의 범위와 시기 등을 놓고 합의점을 찾는 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내놓겠지만, 미국은 영변뿐 아니라 다른 시설들을 포함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검증 방식에서도 기싸움이 예상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핵 동결이 최종 목표일 수는 없지만, 핵 동결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며 “북한이 미국을 믿고 신고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시하고, 상응조치를 우선 받은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이날 일본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 “핵보유국끼리의 핵군축 협상”이라며 “북한은 이런 협상으로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손재호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