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의 입법회 청사 점거라는 초유의 사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회 등을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했지만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입법회 내부를 점거한 모습이었다. 소수의 과격시위가 대규모 평화시위를 지웠다는 비판은 물론 폭력시위가 수세에 몰렸던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반격 기회를 줬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내부 분열도 감지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대부분 시위대가 평화로운 행진을 진행했지만 이날 지배적 이미지는 입법회를 침입한 소규모 시위대였다고 보도했다. 홍콩 주권반환 기념일인 이날 실제 대다수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와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 등을 요구하며 평화로이 거리를 걸어다녔다.
하지만 가장 부각된 모습은 시위대가 쇠창살과 철제카트 등을 동원해 유리문을 깨고 입법회 내부까지 진입한 장면이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려 경찰관 13명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NYT는 극명하게 나뉜 두 가지의 시위 모습은 시위대와 친중정권의 갈등뿐만 아니라 시위대 간의 대립도 보여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과격시위로 인해 중국이 홍콩을 더 엄격히 통제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콩 정치학자인 장 피에르 카베스탄은 “이제 베이징(중국 본토)은 (홍콩과) 타협하지 않아도 될 좋은 구실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 소셜미디어에는 시위대가 비폭력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폭력시위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람 장관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람 장관은 긴급기자회견에서 “극단적인 폭력으로 홍콩 법질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며 “매우 분노하고 슬픔을 느끼며, (폭력시위를) 강력히 비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과격시위의 이면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많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중국과 타협하는 데 너무 열심이고, 결국 공산당이 홍콩의 자유를 잠식하도록 허용해 왔다고 본다고 NYT는 분석했다. 에밀리 라우 전 의원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왜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며 “그들은 너무 좌절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오히려 더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위대의 일원인 나탈리 펑은 “지난 몇 번의 시위에서 우리는 너무 평화로웠기 때문에 경찰은 우리가 쉽게 당할 거라 생각한다”며 “청년들은 우리를 위해 그들의 안전과 미래를 거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