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외무성을 전면에 내세워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본격 돌입한다. ‘하노이 노딜’에 대한 책임을 통일전선부에 묻고,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실마리를 마련하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사실과 함께 김 위원장 옆에 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한 사진을 1일 보도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두 정상 간 회담에 북한 외교를 이끄는 책임자가 자리한 셈인데, 대미 협상 라인이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전면 교체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외무성으로의 대미 협상 라인 교체를 시사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리 외무상이 배석한 사진을 공개하며 다시 한 번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통일전선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때까지 북한의 대미 협상을 주도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최전선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했는데,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방문해 김 위원장 친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넨 것도 그였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하면서 김 위원장의 신임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4월 통일전선부장에서 해임됐고 당내 위상도 예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미 협상 라인 변화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평가했다. 과거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해 온 외무성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이후 통일전선부가 갖는 한계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핵화 협상에 전문성을 갖춘 외무성을 앞세워 신속히 협상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김 위원장이 대남과 대미 협상 라인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외무성을 통해 대미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무성이 전면에 나서는 만큼 미국으로서는 향후 협상에서 애를 먹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외교 전문가들인 만큼 향후 협상에서 까다롭게 나올 수 있다”며 “북·미가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