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는 재정 확대와 함께 경기부양을 위한 대표적 거시경제정책이다. 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나 기업은 이자부담 감소로 수지가 개선되고 지출의 기회비용도 낮아져 소비와 투자를 늘리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좋아지며 수출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경기부양 기대로 경제심리가 좋아지는 현상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금리를 인하한다고 경제가 마냥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 경제 여건을 살펴보면 금리 인하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상당한 데다 과거보다 부작용이 생길 위험도 커져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가계 입장에서 금리가 내려가면 부채이자가 경감되나 금융자산 이자도 감소한다. 가계는 지난해 50조원 가까운 자금을 공급한 순자금 운용 주체였다. 금리가 내려가면 전체 가계의 순금융소득은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 연금 등 이자소득 의존도가 높은 고령층의 소득원이 감소하는 가운데 중장년층에서도 노후 대비 자금 마련을 위해 소비를 줄이려는 유인이 커지게 된다. 20년 넘게 0%대 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금리 인하는 전세금 인상 및 월세 전환을 통해 주거비 부담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주거비 증가 부담이 자가 소유 비율이 낮은 중저소득층에서 부채이자 경감 효과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면 이들 계층의 소비 여력은 오히려 위축될 것이다.
둘째, 기업은 금리가 낮아지더라도 설비투자를 기대만큼 늘리지 않을 것이다. 가계와 달리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많은 기업부문의 지난해 순자금 조달 규모는 40조원에 달한다. 따라서 금리가 내려가면 이자수지가 개선되면서 투자 여력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산업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설비투자의 75%는 대기업이 담당하고 대기업의 내부자금 조달 비율은 85%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기업의 59%가 투자 부진의 이유로 수요 부진과 불확실성을 들었으나 자금조달난을 지적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투자 부진의 원인이 투자 여력 부족이 아니라 경제 불확실성이라는 이야기다. 금리 인하로 환율이 상승한다 해도 보호무역주의 강화, 수출의 환율 민감도 하락 등으로 수출증대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금융시장에서는 금리가 낮아지면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해 증권사 등은 수익성이 좋아지겠지만 은행이나 보험, 연기금 등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대체투자 등 고수익·위험자산 투자가 확대되고 대출 리스크 과소평가 등의 유인이 높아지면 금융회사의 잠재적 부실 위험이 증대하게 된다. 더욱이 금리 인하는 최근 불씨가 살아나고 있는 주택시장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주택 구입이나 전세금 증액을 위한 자금 수요가 늘면 가계부채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넷째, 중앙은행 입장에서도 금리 인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금리정책은 통상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계속 부진하면 추가적인 인하 기대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국제통화 보유국처럼 금리를 0% 수준까지 내릴 수는 없으므로 지금도 금리 인하 여력은 많지 않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보다 인상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예상치 못한 충격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소진돼 있는 상황에 놓일 위험도 커지게 된다.
이처럼 금리 인하는 경기부양 기대효과를 지니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 잠재된 위험도 상당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음에도 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안정에도 소홀할 수 없는 한은으로서는 어떤 방향으로든 정책 결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은은 막대한 데이터와 뛰어난 경제분석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리한 분석과 통찰력, 정확한 판단으로 우리 경제의 믿음직한 조타수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