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은 말 그대로 ‘거룩한 집’입니다. 거룩한 집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전이 아닙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린다 한들 누가 그 예배를 받겠습니까. 그곳이 옷깃을 여밀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역사 속에 성전이 존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광야의 성막,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하나님은 그곳에 충만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어떻습니까. 더 화려하고, 더 웅장해지기는 했습니다. 46년 동안 보수를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성전 안에는 볼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매매와 환전상들이 즐비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집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장삿집이 된 것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곳이 성전이니까요.
예수님이 들어가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뒤엎어 버리고 그들을 내쫓으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평소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격한 표현까지 쓰십니다. 강도의 소굴이 맞습니다. 성전을 수익성 사업장으로 이용했으니까요. 게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밀어내는 마귀의 계략이 먹혔으니까요. 사람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게 강도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이런 강도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그렇지, 좀 점잖게 하시지. 그렇게까지 하시는가. 폭력을 행사하다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은 오히려 점잖으신 편입니다.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심판을 보세요. 얼마나 무섭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가만히 계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모든 행위에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성전시대의 종말입니다. ‘장소로서의 성전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성전이 출현한다.’ 요한복음 1장에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이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킴이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건물 성전에는 없는 그 영광이 예수님에게는 보였습니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전에서는 생명이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리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 성전이 어디입니까. 예수님이 성전이고 예수님 안이 성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를 강조한 겁니다.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영광을 보고 그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이 새로운 성전을 만드십니다. 바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아버지와 함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우리가 성전이 됐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인 교회가 바로 성전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교회로 모인 곳에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귀중한 이유는 함께 성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대할 때, 하나님의 소중한 성전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훗날 하늘성전에 들어갈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성전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장봉생 서울 서대문교회 목사
◇서대문교회는 1949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황해도 출신 성도들이 시작한 교회입니다. 현재 2000명의 성도들이 거룩과 회복을 경험하는 예배 부흥, 예수님을 닮은 제자 삼는 거목 양성,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더 가족 서대문교회’란 표어 아래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