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물결 속에서 기술과 미술이 만나다

입력 2019-07-01 19:32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 기획특별전은 미술과 과학의 만남을 기치로 각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전구의 빛과 매핑 속 그래픽이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며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한 작가의 작품 ‘램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헤드셋을 끼고 화면을 바라보는데 도슨트가 뇌를 집중해서 화면 속 작은 공으로 큰 공을 맞히란다.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 마치 당구게임 하듯 멀찍이 떨어진 작은 공이 점점 큰 공을 향하더니 큰 공을 맞히는 게 아닌가.

지난달 24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미래적인 전시에 관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제25회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아이제아)의 하나로 아시아문화전당 내 문화창조원 복합 5관에서 기획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ISEA는 영국에 본부를 둔 미디어아트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단체다. 매년 행사 개최지가 다른데, 올해는 한국에서 진행하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총감독을 맡았다. 지난달 22~28일 개최된 심포지엄이 학자와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행사라면 이달 28일까지 열리는 기획특별전은 일반인은 물론 방학을 앞둔 학생들이 솔깃해할 전시다.

광주의 순우리말인 빛고을에서 영감을 받아 ‘룩스 에테르나(Lux Aeterna·영원한 빛)’를 주제로 각국 34개 팀의 작가가 참여해 1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뇌파로 공을 움직이고, 뇌파의 움직임을 색으로 해석하는 등 뇌파와 미술을 접목한 프랑스 출신 모리스 베나윤 등 3인 작가의 작품 ‘가치의 가치’처럼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기술과 미술이 어떻게 만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전시다.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기를 통해 인식해 전등이 켜지고 홍해가 갈라지듯 빛이 물결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초상화 기계가 구불구불 선을 그리며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이처럼 거의 모든 작품이 관객참여형 작품이라 일단 재미가 있고 ‘와∼’하고 입이 벌어지는 순간이 많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미술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들러볼 만하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융복합축제인 ‘ACT페스티벌 2019’(8월 4일까지)도 함께 열린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운영하는 레지던시(창작 공간 제공 프로그램) 참여 작가들이 일반에 작품을 공개하는 학예회 격인 ACT페스티벌은 원래 가을에 열리지만, 올해는 ISEA에 맞춰 개최 시기를 당겼다. 주제는 해킹푸드다. 인류세의 도래와 함께 지구환경과 맞서야 하는 지금, 인류 최대의 고민 중 하나가 먹거리라는 것에 착안해 음식과 기술의 결합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맹장은 무용지물이 됐다는 통념과 달리, 유익한 장내 박테리아를 갖고 있는 등 면역기능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새로운 학설이 나옴에 따라 맹장의 새로운 효용 가치를 시각적으로 풀어주는 ‘막창자꼬리 인간’,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귤껍질로 만든 컵과 숟가락 등 대안적인 부엌을 제안하는 설치 작품 ‘키친메이커를 위한 요리책’ 등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음식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식 조리법을 생성하기도 한다. AI가 생성한 조리법으로 만든 요리를 맛보는 체험 코너도 흥미롭다.

광주=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