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충돌하며 벌어진 폭력사태에 대해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자유한국당은 “표적 소환에 응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는 가운데 경찰 수사까지 본격화되면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협상이 더 꼬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된 데 대해 “날치기 패스트트랙을 유발한 불법 사보임 등 이 사태의 모든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집권세력부터 수사하라”며 “그러면 우리 당도 당당하게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온갖 수모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어떻게든 국회로 들어가 일하려는 우리 당에 어떤 보복이 가해지고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한국당 소속 엄용수 여상규 정갑윤 이양수 의원에게 다음 달 4일까지 출석하라는 소환통지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4월 25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사보임에 반발하며 채 의원 사무실을 점거해 감금한 혐의(특수감금) 등으로 소환 통보를 받았다.
영등포서는 조만간 다른 건으로 고발된 의원들에 대해 수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와 관련해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15건, 연루된 의원은 97명이다. 정당별로는 한국당 62명, 더불어민주당 25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이다.
앞서 지난 4월 29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아 4당 합의로 선거제 및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 개혁 관련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여야 간 격한 대치가 벌어졌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당 의원들도 민주당 의원들을 공동상해 혐의 등으로 맞고발했다.
경찰은 민주당과 한국당 보좌진도 조사 중이다. 전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백혜련 의원은 “저희 보좌관이 피해자로 영등포서에 조사받으러 갔다”며 “현재 증거 영상은 상당히 방대하게 모였다. 고소·고발 취하는 있을 수 없고 원칙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을 향해 “자신들의 잘못을 정치적 공세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원내대변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범법 행위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한국당만 편파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특권의식”이라고도 했다. 또 고소·고발을 철회할 뜻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정 원내대변인은 경찰 수사로 여야 관계가 더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수사는 수사대로 받고 국회는 국회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