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못 놀고 못 쉬는 아이들… 10년간 행복권 퇴보”

입력 2019-06-27 22:23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중구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지난 10년간 의식주 등 아동의 기본권은 신장됐지만 행복권은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만난 이제훈(79) 회장은 “최근 학업 등의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가출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야 하지만 정서적으로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정서적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잘못된 교육방식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스트레스가 제때 해소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단이 서울시와 함께 학교 빈 교실을 활용한 ‘스트레스 프리존’을 운영하게 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스트레스 프리존은 교실에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마련한 장소다. 이 회장은 “아이들이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클 수 있도록 놀이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저출산 문제도 아이들의 행복권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기 위해 가정이 중요한데 저출산 시대에 함께 뛰놀 형제가 없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외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 아동, 다문화 아동 차별 문제에도 우려를 표했다. 이 회장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아동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무국적 난민 아동이 교육, 취업 등 모든 권리에서 벗어나 있는 현 상황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모든 아동은 비차별적이고 최우선적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혼모 출산에 대해서는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외치면서 미혼모 문제에는 소홀해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며 비판한다. 이 회장은 “앞으로 미혼모 출산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며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부모를 위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벌써 9년간 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아동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 왔다. 재단은 대통령 선거나 지방 선거 때마다 만 18세 미만 아동들의 의견을 모아 후보 캠프에 전달하는 ‘미래에서 온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게 해 달라’ ‘공부시간을 줄여 달라’ ‘부모님이 빨리 퇴근해서 집에 오게 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회장은 “투표권이 없는 아동은 정치적 측면에서 소외되거나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며 “나라의 장래인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