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목회자 자녀로 갈등… 방황… 부활 믿은 후 ‘자랑’으로 바뀌어

입력 2019-07-01 00:08

아버지는 오래 목회를 하셨고, 어머니도 목사안수를 받으셨다. 형도 전도사로 사역하는 믿음의 집안에서 자란 나는, 교회는 삶의 전부였다. 친구들이 ‘학교 종이 땡땡땡’하며 동요를 부를 때 나는 ‘마귀들과 싸울지라’하며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나 내 믿음은 완전 바닥이었고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복되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화부터 났다.

그러나 온갖 수련회나 집회를 다니며 큰 노력을 했고, 중학생 때 어느 집회에 가서 시키는 대로 “야야야야”하며 따라 하다가 방언도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통당하는 것을 떠올리며 애써 눈물을 흘리며 뒤로 쓰러지는 경험도 해보았지만 내 믿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아니 누가 죽어 달라 했나?’ 결국 나는 목회자 아들로 태어난 것에 불만을 품은 채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형편도, 가족여행을 못하는 것도 늘 불만이었다. 무엇보다 목회자 자녀의 꼬리표에 따른 기대와 강요, 삶에서 모범을 요구하는 부모님까지 나의 삶은 더욱 힘들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더 못살겠다.’ 피가 나도록 교회건물을 주먹으로 치고 가위로 머리카락을 막 자르기도 했다. 교회 차 유리를 산산조각내고 침대, 컴퓨터, 책상 등을 마구 부수며 거칠어졌다. 학교생활도 선로를 벗어나 달리는 기차 같았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폭력사건으로 처벌도 받았다.

새로운 돌파구를 빨리 찾고 싶어 취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마음교회에서 훈련을 받던 형이 겨울수련회에 꼭 오라고 했다. 필리핀여행 준비를 중지하고 어쩔 수 없이 참가했지만 목사님의 말씀은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셋째 날, 어느 자매가 목회자의 딸로 증거 없이 강요받은 신앙으로 안티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변화되었다는 충격적이고 놀라운 간증을 하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필리핀여행을 포기하고 교회에서 훈련을 받기로 결심했다.

“나도 너무나 잘 아는 부활을 증거로 예수님을 믿었다”는 분들의 간증을 들으며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예배 때 내가 만약 결혼하여 자식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내 말을 절대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산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 부어지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때 내 마음과 내 뜻대로 하나님 마음에 못을 박고 발로 짓밟고 있었던 지난 삶이 보였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는 통곡과 탄식이 나왔다. 그리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부활이 내 마음속에 실제적 사건으로 믿어졌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보일 수 없는 표적! 부활의 증거!’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임이 선명해졌다. 하나님을 버린 죄, 마땅히 죽어야 할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다시 살리심으로 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그 크신 사랑 앞에 회개가 터져 나왔다. 나는 즉시 고백했다. ‘주님! 다시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목회자 자녀로 겪었던 갈등과 방황의 삶도 그렇게 끝이 났고, 지난날의 나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리겠다는 진심의 고백을 했다. 그리고 바로 훈련관에 들어가 7개월가량 신앙훈련을 받았다. 가정형편은 여전히 어렵고 가족여행도 못가지만 영원한 것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 가족이 지금은 너무 자랑스럽다.

오늘도 나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내 삶을 드리고 있다. 이 길을 가다가 순교의 잔이 내게 온다 하더라도 마땅히 감당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김종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