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학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총장이 학술적 스파이 행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중국계 학자들을 감시하고 의심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또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거래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화웨이에 계속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 무역·기술전쟁 대오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라파엘 레이프(사진) MIT 총장은 25일(현지시간) MIT 커뮤니티에 보낸 서한에서 “MIT는 학술적 스파이 행위에 대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중한 예방책을 수립했다”며 “하지만 근거 없는 의심과 걱정 때문에 유독한 환경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이프 총장은 “대학의 동료 교수진과 연구원, 학생들이 단지 중국계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조사를 받고 낙인이 찍히고, 불안에 떨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안보가 중요하지만 중국계 사람들에게 지나친 사찰과 핍박을 하는 것은 미국이나 MIT에 독이 될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인종이나 출신지, 종교, 국적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은 학자나 교수, 기업인, 발명가, 지도자로서 지역사회의 모범일 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기여도가 큰 인재들”이라며 “그들의 값진 활동에 대해 불신과 멸시로 되갚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그는 밝혔다.
레이프 총장은 MIT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중국계 미국인 고 이오밍 페이를 거명하면서 “그는 평생 의식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둔 삶을 살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스턴 글로브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미국인 건축가’라고 평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MIT는 지난 4월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프린스턴대 등이 화웨이 및 ZTE와의 연구 협약을 중단하자 뒤이어 화웨이 등과의 관계 단절을 발표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를 거래제한 대상인 블랙리스트에 올렸지만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화웨이에 계속 제품을 판매해왔다고 보도했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 반도체기업들은 화웨이 거래제한 조치 이후 거래를 중지했다가 법률 자문을 거쳐 3주 전쯤부터 미국 밖에서 생산된 제품을 화웨이에 판매해왔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명단에 올렸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25% 관세를 부과 중인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제품 외에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이를 발표할 수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오사카 출국 직전 폭스 비즈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시 주석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대규모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요즘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 있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