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은 한국 현대사 최고 엘리트를 말할 때 첫손에 꼽힐 만한 인물이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스펙’은 누구보다 대단하다. 이런 이력 탓에 이회창은 과거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귀족 후보”라는 공격을 받았었다. 대중의 반감을 끌어내려는 정치적 수사였지만 이회창의 가족사를 감안한다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컨대 이회창의 본가와 외가 사람들 학벌을 살펴보자. 이회창의 백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였다. 외삼촌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이모는 홋카이도제국대학을 나왔다. 제국대학은 일제강점기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내걸린 사다리였다. 우리는 이회창을 통해 한국 엘리트의 가계도에 새겨진 선명한 제국대학의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 조사를 통해 한국 엘리트의 뿌리가 가닿은 지점을 살핀 역작이다. 저자는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부교수인 정종현. 그가 제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 조사에 나선 건 교토대에서 1년짜리 연수를 하던 2010년부터였다. 처음에는 일본 본토에 있는 일곱 지역(도쿄 교토 도호쿠 규슈 홋카이도 오사카 나고야)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을 전수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귀국 이후 “한국의 지식시장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조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책은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을 중심으로 완성됐는데,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를 누구도 깎아내릴 순 없을 것이다.
일단 제국대학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제국대학은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기관으로 총 9개였으며, 일본 본토에 세워진 대학은 이들 중 7개 학교였다. 저자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7개 학교에 유학한 조선인은 784명이다(표 참조). 하지만 입학했다가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거나, 위탁생 신분으로 공부한 학생을 더하면 1000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 시절 제국대학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금이야 사립인 와세다대나 게이오대가 ‘명문’으로 통하지만 당시 이들 학교는 ‘전문대학’으로 구분됐고 졸업생도 ‘학사’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도 제국대학을 나온 한국인의 파워는 대단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을 움켜쥐었다. 가령 남북한의 헌법을 만드는 데 각각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진오와 최용달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국회의원 30명과 법률 전문가 10명이 완성한 초안이 바탕이 됐는데, 전문가 10명 중 6명이 제국대학을 나왔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의 가치는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 숨어 있는 제국대학의 흔적을 꼼꼼하게 살폈다는 데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청운의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넌 조선의 청춘들이 어떻게 민족보다는 입신양명의 길을 좇게 됐는지 들여다본 대목이다.
책에 실린 사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케이스는 조선 최고의 기업가였던 김연수다(그는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김연수는 “자기 땅만 밟고서도 전라도 전역을 다닐 수 있다”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조선인 최초로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이후엔 경성방직(이하 경방)을 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경방은 “삼성과 현대, SK, 한화 등의 창업자들이 자기 사업을 막 일구기 시작할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국형 재벌의 기원”이었다.
핵심은 김연수의 경방이 어떻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느냐다. 김연수는 제국대학에서 훗날 식민지 재계와 정계를 지배할 일본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사업가에게 ‘네트워크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김연수는 돈과 권력을 얻었고 이런 힘은 자식에게 유전됐다. 김연수의 둘째 아들 김상협은 도쿄제국대학 정치학과를 나와 고려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우리네 근현대사에서 “제국대학은 한국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 작동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를 풀어내면서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여학생들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국대학과 조선인 유학생 스토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다시 이회창과 관련된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이회창의 가족사를 들려준 뒤 이렇게 말한다.
“(이회창이) 좋은 배경을 타고난 것이 그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의 역사성은 문제 삼아야 한다. 내게는 (이회창이 낙선한) 1997년과 2002년의 두 번에 걸친 대선 결과가 근 한 세기 동안 공고하게 계속된 귀족적 기득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거부로 여겨진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