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로 변신한 은행원들… ‘평범·솔직함’으로 어필

입력 2019-06-29 04:05 수정 2019-07-02 17:41
은행원들이 유튜버로 변신해 활약하고 있다. 이대훈(가운데) NH농협은행장이 NH농협은행의 유튜브채널 ‘NH튜브’에 출연해 박지원(오른쪽) 계장 등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 NH농협은행 유튜브채널 캡처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이 헌혈 행사장에서 “반백년 B형으로 알고 살았는데 (혈액형 검사 결과) O형이라고 나왔다”며 화들짝 놀란다. 옆에 있던 입사 2년차 박지원(28) NH농협은행 계장이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떤 기분이냐”고 묻는다. 이 행장이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NH농협은행의 유튜브 채널 ‘NH튜브’에 올라온 ‘사랑의 헌혈 행사’편 일부다. 은행 내부행사를 알리는 유튜버는 박 계장이다. 이 행장과 박 계장 사이엔 어떤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자막은 ‘시청의 맛’을 더한다.

최근 은행원들이 잇달아 유튜버로 변신하고 있다. 은행원의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 보수적 조직문화를 가진 은행권이 유튜브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원 유튜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편견을 깬다

안주연(30·여) 계장은 올해 입사 5년차다. NH농협은행 디지털전략부 빅데이터 분석팀에서 일한다. 디지털 혁신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팀이다. 많은 부서가 신규 상품이나 프로젝트를 내놓기 전에 빅데이터 분석팀의 도움을 받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데도 안 계장은 지난 3월 사내 유튜버에 자원했다.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안 계장은 농협은행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는 “농협 하면 사람들이 농촌, 쌀, 2차 산업혁명처럼 구식 이미지만 떠올려 속상했다”며 “디지털 분야에서 일하는 만큼 농협이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은행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안 계장이 출연한 ‘안 사원의 금융생활’은 2개월 만에 17만 조회수를 넘겼다. 그는 생방송처럼 꾸며진 화면에서 금융상품을 소개한다. “농협은행의 ‘올원뱅크’로 모임통장을 만들면 회비 장부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하자 채팅창에 ‘재테크 초보’라는 이용자가 기부금을 전달한다. 능숙한 방송 진행과 실제 1인 방송 같은 영상 편집은 상품 광고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든다. 안 계장은 사내 유튜버 모집 공고가 났을 때 “날 위한 자리”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원더걸스의 ‘텔미(Tell Me)’ 춤을 추는 개인촬영영상(UCC)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릴 정도였다. 유튜버가 된 이후로 회사 생활도 변했다. 그는 “어색했던 동료들과 친해져 일을 할 때 더 즐겁다”며 “계속해서 유튜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민령(오른쪽) 우리은행 대리가 진행하는 우리은행 유튜브채널 ‘웃튜브’의 메인 코너인 ‘은근남녀썰’. 김 대리는 수다를 떨 듯 은행원의 일상을 소개한다. 우리은행 유튜브채널 캡처

책임감과 보람 사이

김민령(33·여) 우리은행 대리는 광명지점의 자산관리(WM)팀 프라이빗뱅커(PB)다. VIP고객을 응대하는 중요한 자리다. “전달력 있는 목소리와 발음, 그리고 재치있는 언변”이 강점이라고 말하는 김 대리는 우리은행 사내방송에서 진행자로도 활약 중이다. 입사 전 아나운서를 꿈꿨던 김 대리는 지난해 3월 사내 유튜버 제안이 들어오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김 대리가 출연하는 ‘은근남녀썰(은행에서 근무하는 남녀 이야기)’은 우리은행 유튜브 채널 ‘웃튜브(WooTube)’의 메인 코너다. 2명씩 짝을 이뤄 수다 떨듯이 자연스럽게 은행원의 삶을 소개한다. 평균 조회수 3만회를 찍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김 대리는 ‘은행 취업에 금융자격증이 필수일까요?’ 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영상에 은행 취업준비생인 친구를 태그하더니 “은행원이 되려면 이런 자격증도 필요하대”라고 남긴 댓글을 보고 나서다. 김 대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김 대리는 PB업무뿐만 아니라 마감시간에 자동입출금기(ATM) 잔고 확인도 도맡는다. 영상 촬영은 서울 강남 스튜디오에서 평일 오후 7시에 진행되는데, 오후 6시까지 지점 마감을 마치면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는 “스튜디오로 가는 지하철에서 화장도 한다. 피곤하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빠르게 몰입되는 걸 보면 방송 체질인 것 같다”고 웃었다.


‘은행원 유튜버’ 마케팅의 이유

다른 은행들도 ‘은행원 유튜버 마케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은행원들을 아예 전문 유튜버로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까지 계획하고 있다. 은행들이 은행원을 유튜버로 쓰는 이유는 평범함과 솔직함을 내세울 수 있어서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은행원이 일상을 소개하면서 공감을 얻는다고 본다. 한 은행의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운데 유튜브가 인기가 많아 대부분 은행이 유튜브 영상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다만 특출난 사람의 이야기를 내세우기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이야기로 은행 업무가 어렵다는 기존 인식을 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방탄소년단(BTS)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가식적이거나 인위적인 기성 광고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제는 ‘진정성’ 있는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실제 은행의 모습도 유튜브에 비춰지는 것처럼 변해야 진정성 마케팅이 계속 소비자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운형 인천대 디자인학부 교수(광고홍보학 전공)는 “젊은이들이 은행원을 선망하는 데다 은행이 가진 보수적 이미지가 되레 은행원 유튜브 영상에 호기심을 느끼게끔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흥미를 끄는 콘텐츠를 얼마만큼 지속해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