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민주노총 결별 수순, 노무현정부 데자뷔

입력 2019-06-26 04:05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4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탄압 규탄과 민주노총 대응 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여권과 민주노총이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21일 구속되면서 정면충돌로 치닫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이 청와대를 향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문재인정부와 투쟁하겠다”고 선언하자 여권 내에서도 민주노총을 향한 공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5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법부의 엄정한 법 집행 결과”라면서 “민주노총은 귀를 활짝 열고 상식의 눈으로 노동운동에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 구속에 언급을 자제하던 민주당 지도부가 민주노총을 공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현 정부의 노동 현안 관련 성과를 언급하면서 “모든 노동자들이 만족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를 한꺼번에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파업 계획을 멈추고 노동계의 상급단체로서 상생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당 내부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노총이 뭔가를 착각한 것 같다. 노동의 가치가 법 밖에 있을 수는 없다”며 “민주노총도 법대로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충분히 입장을 피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태도가 과연 국민적 동의를 받을 수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여권과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주요 노동 현안을 두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복도에서 민주노총 간부를 향해 “내가 보기엔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라고 언성을 높인 게 대표적이다. 여당은 국회 바깥에서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거센 요구에, 국회 안에서는 보수 야당의 반발에 부딪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여권과 민주노총의 누적된 갈등은 김 위원장 구속으로 감정적인 충돌로 폭발하게 됐다. 민주노총이 “문재인정부의 선전포고” “촛불 정부를 자임할 수 없다”는 등 강도 높은 비판에 나서자 여권 내에서도 ‘도를 넘었다’는 기류가 강해졌다.

여권과 민주노총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노무현정부 당시 상황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노무현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법안 처리 등의 이슈를 두고 민주노총과 충돌했고 결국 지지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민주노총은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에도 논평을 통해 “정부가 잘하는 것에는 지지를 보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강력한 비판과 투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노무현정부가 잘못 간 길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만 여권이 진보 진영의 주요 축인 민주노총과 충돌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불법 폭력 사태는 유감스럽지만 민주노총을 적대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판 신재희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