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미투’ 촉발 최영미 시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입력 2019-06-25 20:28 수정 2019-06-25 23:16
6년 만에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낸 최영미 시인은 2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동안은 시를 잃지 않을 거다.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있나요”라고 말했다. 새 시집에는 연애시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최현규 기자

한국 문단의 성폭력을 고발하며 문학계 ‘미투(MeToo)운동’을 촉발한 최영미(58) 시인이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을 냈다. 최 시인은 2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등단 직후 문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시를 썼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며 “미투운동 이후에야 고은 시인의 행태를 고발한 내 시 ‘괴물’이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여섯 번째 시집에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수록한 ‘괴물’ 등 문단 성폭력과 관련된 시 5편을 포함해 시 48편을 수록했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등단 소감’ 중) 이 시는 등단 직후인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쓴 것이다.

그는 이렇게 등단 초기부터 문단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슈가 되지 않았다. 최 시인은 “문단에 힘 있는 평론가, 심사위원, 출판인 대부분이 남자이지 않냐. 권력을 쥔 그들이 이런 글을 불편해했을 것 같다”며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도 없었다. 운동이 힘을 받으려면 구체적인 삶에 기반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괴물’이란 시로 촉발된 논란으로 고은 시인과 법정 다툼까지 하고 있지만 문단 성폭력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2016년 한 예술고 여학생들이 들고일어나면서 문단 성추행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그 용기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괴물을 너무 늦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최 시인은 이번 시집을 본인이 직접 세운 출판사에서 냈다. “한 출판사에 출간 의사를 타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주요 문학 출판사가 그 원로 시인의 시집을 냈고, 관계자들이 그 시인과 두루 친분이 있어 부담됐던 것 같다”고 했다. 성추행을 직접 다룬 시의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던지는 투수가 훌륭한 투수라고 생각한다. 직접 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