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자후] “IT 후진국 안되려면 게임질병코드 도입 신중해야”

입력 2019-06-27 22:09

얼마 전 세미나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넣는 세계보건기구(WHO) 결정에 찬성하는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에게 기자가 물었다. 왜 우리는 한국처럼 초등학교에 초고속인터넷을 깔지 않는가라고. 그랬더니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어린이에게 인터넷을 접하게 하는 것은 아이를 고속도로에 혼자 놔두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프랑스의 교육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인터넷이 깔리고 청소년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비판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모르는 것이 있다. 유럽 중 특히 프랑스가 IT 후진국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전송하려면 무려 5분이 넘게 걸리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증하려면 핸드폰 번호를 입력한 후 인증번호를 ‘메일’로 받아서 해당 사이트에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인증 유효기간이 30일이라고 한다. 왜 30일이냐고? 그것은 인증번호가 말 그대로 ‘메일’, 즉 우편으로 오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초조해 하는 것이 또 있다. 프랑스에는 구글이나 네이버·라인 같은 인터넷기업도, 엔씨소프트·넥슨 같은 게임산업도 없다. 말 그대로 콘텐츠 후진국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유럽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게임산업과 IT기업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번 WHO가 지정한 게임질병코드를 가장 먼저 도입하려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질병코드의 도입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다 줄 것이다. 첫째가 게임문화의 위축이다. 이번 질병코드 지정에서 게임은 술, 담배, 마약 등 원인물질과는 다른, 행위에 대한 중독 즉 도박중독과 유사하게 지정됐다. 하지만 일반 국민에게 원인물질인지 행위중독인지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게임에는 중독물질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질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아무 고민 없이 건전하게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도 자신이 게임 장애자가 아닌 지 고민하면서 게임을 하게 될 것이고, 학부모 역시 자녀가 게임 장애자인지를 고민하면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게임산업에 대한 타격도 문제다. 과거 셧다운이나 웹보드게임 규제를 기반으로 추산해 보면 30% 이상의 시장 축소가 예상되고, 이는 15조원 게임산업 중 5조원이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게임 인력 양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게임 셧다운 논란이 터지면서 게임학과 입학생 점수가 하락한 바 있다.

프랑스처럼 IT 후진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게임질병코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