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하반신 마비 김병욱씨, 로봇 입고 경사로·계단도 ‘거뜬’

입력 2019-06-24 19:41
20년 가까이 휠체어에 의지해온 다리완전마비 장애자 김병욱씨가 지난 20일 대전시 유성구 카이스트 기계공학동 모의훈련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인 ‘워크온슈트’를 착용하고 걸어보고 있다. 뉴시스

등에 멘 ‘워크온슈트’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잠시 기다리자 김병욱(45) 선수의 다리가 위 아래로 움직였다. 1998년 뺑소니 사고로 하반신 전체가 마비되는 장애를 얻은 김 선수는 20년 가까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왔다. 양 손에 쥔 보조장치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그재그 걷기와 경사로 걷기, 가장 어려운 계단 오르내리기도 문제 없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사이배슬론(Cybathlon) 2020 국제대회’를 1년 여 앞둔 24일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팀을 위한 출정식을 열었다. 장애인들이 로봇 등의 생체보조장치를 착용하고 겨루는 사이배슬론은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국제대회다. 2016년 1회 대회에 이어 2회 대회가 내년 5월 스위스에서 열린다.

지난 대회 ‘착용형 외골격로봇(웨어러블 로봇)’ 종목에 출전한 공 교수팀은 5개 코스를 252초의 기록으로 통과하며 3위에 올랐다. 1회 대회 당시 웨어러블 로봇 종목의 코스는 앉고 서기, 지그재그 걷기, 경사로를 걸어 올라 닫힌 문을 열고 통과해 내려오기, 징검다리 걷기, 측면 경사로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이었다.

김병욱 선수는 “대회장소가 6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모두 매진됐다.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며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우리나라와 전혀 달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코스는 계단 오르내리기인데, 지난 대회에서 바로 계단을 탔더니 당일 저녁에 놀랍다는 현지 언론보도가 나왔다”고 했다.

지난 4년 간 기술수준이 크게 발전한 만큼 2회 대회의 난이도 역시 크게 높아졌다. 때문에 새롭게 개발 중인 ‘워크온슈트4.0’에도 신기술이 접목됐다. 가장 큰 특징은 완벽히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돼 양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 교수는 “현재 개발 중인 로봇은 ‘단 한 명을 위한 최고의 로봇을 만들자’는 콘셉트로 제작됐다”며 “어려워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들어 있어 재미있는 대회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년 대회를 위해 첫 대회 당시 유일한 선수였던 김병욱 선수뿐 아니라 7명의 후보가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모든 선수는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된 워크온슈트4.0을 지급받아 보행훈련을 실시한다. 오는 11월 선수 1명과 보궐 선수 1명이 최종 선발될 예정이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사람을 위한 로봇기술은 KAIST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도전·창의·배려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기술”이라며 “앞으로도 약자를 위한 기술 개발에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