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답신 성격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북·미 정상 간 신뢰를 재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중단된 비핵화 협상이 본격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티븐 비건(사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번 주 방한하면 북·미 실무협상 가동을 위한 한·미 당국 간 움직임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친서 외교’를 통해 양 정상의 공고한 신뢰 관계를 재확인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 하루 전인 지난 11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으로부터 ‘따뜻하고 멋진’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한 바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 위원장이 친서를 읽고 있는 사진을 확대해보면 친서는 인사말로 보이는 2줄의 문장과 9줄 정도의 비교적 긴 한 문단, 그보다 짧은 한 문단, 그리고 마지막 1∼2줄의 문장 순서로 구성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친서를 통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피력하면서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빨리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하면서 이를 위한 실무협상을 제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공개한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20~21일) 직후이면서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내부 평가를 마치고 협상장에 다시 나오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의 친서 외교가 재가동된 데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친서 교환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우리 정부도 한·미 간 소통을 통해 (친서 교환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북·미 간 좋은 내용의 친서가 오가는 것은 청와대로서도 나쁠 게 없다”며 “양측이 적극적 대화 의지를 밝히는 것이고, 비핵화 협상 재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측 북핵 수석대표인 비건 특별대표는 이번 주 중반쯤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특별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비핵화 협상 전략 및 상황 등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해 비건 특별대표를 만났던 만큼 한·미 협의 외에 북·미 실무접촉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나오려면 그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며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제안이 도출되고, 이를 전하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미 간 실무협상과 3차 정상회담 개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중 정상회담 종료 직후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공개한 것은 북·미 대화를 기정사실화하는 수순”이라며 “다음 달 초쯤 북·미 실무협상이 열린다면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일단 올해 말을 협상 시한으로 내걸었지만 북·미 간 사전 조율이 잘 이루어지면 여름이나 가을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연말부터는 차기 대선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북한과 협상을 마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이상헌 강준구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