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학원 다녔는데, 선생님은 아이가 누군지도 몰라요”

입력 2019-06-24 04:07

“1년 동안 아이가 연기학원에 다녔는데도 캐스팅이 되지 않아 직접 찾아갔더니 선생님들은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더라고요.”(아역 배우 지망생 어머니 신모씨)

아역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용해 금품을 가로채는 일이 기획사뿐 아니라 일부 연기학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일부 드라마 제작감독은 이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고 있다.

아역 배우 지망생 부모들에 따르면 ‘꿈팔이’는 연기학원에서 상습적으로 일어난다. 한 아역 배우의 어머니는 “연기학원에서 ‘애는 괜찮은데 연기가 안 된다’고 해서 연기 수업료로 300만원을 냈고, 나중에는 개인 트레이닝까지 필요하다고 해서 총 1000만원을 지불했다”며 “부모 입장에서는 학원의 말을 믿고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기학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문을 닫는 학원이 생기면 수업료를 돌려받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아역 배우 어머니 이모씨는 “1년 전 아역 학원이 사기 의혹으로 무너지면서 6개월 학원비 수십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다른 부모들도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해 조용히 넘어갔다”고 전했다.

한 웹드라마 제작사 A감독은 꿈팔이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아이가 오디션에 합격하려면 연기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아역 배우 부모들에게 25회에 300만원짜리 연기 수업을 제안했다. 수업은 5차례가량만 이뤄졌고 이후 그와의 연락은 끊겼다. 고소하겠다고 항의해 돈을 일부 돌려받은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아이 앞가림에 방해가 될까 문제삼지 않았다. 전국출연자노조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A감독은 부모들에게 각종 촬영 비용까지 요구했다. 아역 배우 어머니 B씨는 “감독님이 특별히 봐주겠다면서 작품 촬영비·회식비·워크숍비를 요구하니 안 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 부모인 C씨는 “A감독에게만 수백만원을 지불했다”면서 “‘차기작이 있다. 나만 믿으면 다 해주겠다’고 말한 지 2~3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피해 부모들에 따르면 A감독은 출연료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인당 3만~4만원의 출연료를 지급했다. 일반적인 1회 보조출연료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A감독은 출연자노조 측에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23일 밝혔다.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아역 배우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기획사에 지급된 출연료가 아역 배우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해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박성우 노무사는 “연기자들이 기획사에 소속돼 있더라도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보편적인 특수고용직들의 문제로 결국 개인이 고소·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기획사와 아역 배우 양쪽이 합의한 계약은 내용 자체를 문제 삼기 힘들며 돈을 일부 돌려받았다면 형사 처벌도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의 장래가 걱정돼 고소·고발을 택하지 않는 부모가 대다수다. 신씨는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기를 당해서 출연이 계속 무산되니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져 결국 배우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아동 청소년 연기자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약속된 출연료를 받지 못하거나 야간 촬영을 요구받더라도 쉽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며 “현재는 아역 실태 조사도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