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깎아주겠다더니… 한전 개편안 보류, 여름 전기료 인하 ‘빨간불’

입력 2019-06-24 04:04
한국전력공사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전 이사회는 이날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보류했다. 뉴시스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을 앞두고 정부의 주택용 전기료 인하 방침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여름철 전기요금을 가구당 1만원 정도 할인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요금 인하에 따른 적자 보전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전은 개편안 통과가 어렵다는 분위기다. 정부 역시 지원 방안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워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21일 이사회에서 누진제 개편안을 보류한 것은 배임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앞서 소액주주들은 한전 이사회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개편안을 통과시킬 경우 배임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한전은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7~8월 두 달간 전기요금을 깍아주면서 약 3000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개편안을 수용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손실을 감내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이번 개편안은 기본공급 약관을 개정하는 것이어서 일회성이 아니다. 해마다 비슷한 규모의 손실을 한전이 부담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전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62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7년 4조953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한전은 지난해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한전은 개편안을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류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재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정확한 시기는 특정할 수 없지만 빠른 시일 내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확실한 손실 보전책이 없는 상황에서 한전 이사회가 개편안을 통과시키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한전이 개편안을 보류한 것은 정부를 향해 확실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로서도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개편안에 따른 요금 인하분을 지원할 수 있도록 편성된 예산이 없다. 추경에도 관련 항목은 없다. 한전이 원하는 정부 지원 등을 문서화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개편안을 부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한전의 고민이다. 누진제 개편안은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에서 마련한 최종 권고안이다. 정부의 일방적 지시도 아니고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도출한 결과물을 공기업인 한전이 거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한전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초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다음 달 전기 사용분부터 할인을 적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전 이사회와 엇박자를 내면서 체면을 구긴 셈이다.

산업부는 한전 임시이사회에서 최대한 빠르게 의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결정이 나면 누진제 완화에 따른 한전의 적자 보전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과 함께 논의해 의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 이사회 결정이 남은 상황이라 예산 지원 등의 적자보전 방안을 제시하기엔 아직 이르다”면서 “만약 의결이 이달 안에 마무리되지 않고 다음 달로 넘어가더라도 누진제 완화는 소급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었다. 이에 맞춰 지난해 7~8월 사용분을 소급해 할인해주거나 검침일별로 8~9월분 전기요금을 깎아줬었다.

김준엽 기자, 세종=전성필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