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의 소송, 규제 조치 무력화 위한 ‘전략적 봉쇄’… 정부·학계 공동 대처 중요”

입력 2019-06-24 17:53
우루과이에서 방한한 에두아르도 비앙코 박사가 24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2019 담배소송 세미나’에서 다국적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에 의해 우루과이 정부가 제소당한 경험과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다국적 담배회사가 우루과이처럼 작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담배 규제 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로 봐야 합니다.”

담배규제협약연합 아메리카 지역 조정관인 우루과이의 에두아르도 비앙코 박사는 24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최로 열린 ‘2019 담배소송 세미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비앙코 박사가 언급한 다국적 담배회사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이다. 우루과이, 미국, 스위스에 기반을 둔 PMI 3개 지주회사는 2010년 2월 우루과이 정부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토대로 담뱃갑 경고 문구 및 그림 면적 확대, 담배값 인상 등 정책을 시행한 우루과이에서 흡연율 및 담배판매 감소 등 효과가 확인돼 국제 담배규제의 모델로 인정받자, 관련 정책이 1991년 체결한 스위스-우루과이 양자투자협정에 위반된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사회 지원에 힘입어 2016년 7월 우루과이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

비앙코 박사는 “전략적 봉쇄 소송은 비난하는 사람들이 비판이나 반대를 포기할 때까지, 그들에게 법적 비용 부담을 지우면서 협박하고 침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PMI는 언론과 긴밀 접촉을 통해 우루과이 정부가 중재 소송에서 지게 되면 최소 3억에서 최대 20억 달러의 비용을 물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우루과이 정부에게 담배규제조치 완화를 조건으로 법적 분쟁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앙코 박사는 “그들이 분쟁을 통해 진실로 원했던 것은 우루과이 정부의 담배규제책을 후퇴시키려는 것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루과이 정부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내 담배확산연구센터 등 시민사회단체의 노력과 WHO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담배 회사의 비슷한 법적 공세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한국필립모리스(PMK)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6월 식약처가 발표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결과’의 근거를 밝히라는 것이다.

식약처 소송 대리를 맡은 이동국 변호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담당 부서와 공무원을 압박해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하거나 다른 부처로 이전하게 하려는 담배회사들의 전통적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질의 추가 조사, 인체 유해성 실험이 늦어지고 그 사이 담배회사는 신종 담배를 출시해 다시 앞서 나가려는 전술”이라고 꼬집었다.

건보공단이 PMK와 KT&G, BAT코리아 등 3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2014년 4월 제기한 537억원의 ‘흡연폐해 규제를 위한 담배소송’도 5년째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까지 13차 변론이 진행됐다.

강영호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패널 토론에서 “담배기업의 전략적 공격에 맞서려면 건보공단과 식약처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정리돼야 하고 담배소송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 학계, 시민단체 간 공동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