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간 북한이 취한 비핵화 조치가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올 연말까지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비핵화 협상 시한을 올해 말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지난 네 차례 방북을 전후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빅 이벤트가 열렸던 만큼 이번 5차 북·중 정상회담이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지 주목된다.
중국중앙방송(CCTV)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린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해결돼 ‘성과’가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협상을 이어갈 의사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화 의지를 담은 친서를 보냈다. 이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를 빌려 협상 재개 의사를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핵 문제에서 한동안 비켜서 있던 시 주석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중재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시 주석은 “조선(북한) 및 관련국들과 협력을 강화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지역의 장기 안정에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다자협상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중국의 참여를 공식화한 바 있다. 북핵 다자협상은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됐던 사안이다.
단 중국은 북한이 가장 원하고 있는 대북 제재 문제에선 당분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줄 방북 선물도 제재와는 무관한 인도주의적 분야에 한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 주석은 방북 전인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격 전화 통화를 했고, 다음 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시 주석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든,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이끌어낼 중재안이든 새로운 카드를 제시해야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 담판 때 유리할 수 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 격상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모두 4차례 방중했고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시 주석이 방북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은 수교 70주년을 맞아 전략적 밀월 관계를 다지면서 교류를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시 주석이 오는 10월 중국 건국 70주년 및 북·중 수교 70주년에 맞춰 김 위원장을 초청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관건은 미 정부의 행보다. 김 위원장의 방중 및 북·중 정상회담 뒤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북하는 패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비건 대표는 이달 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앞서 25일쯤 먼저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북·미 간 판문점 접촉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외교 소식통은 “아직 구체적인 징후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jhk@kmib.co.kr